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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ELS 손실' 자율배상 우선 하라지만…은행권 고심

2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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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윤슬기 기자 = 금융당국이 홍콩 항셍(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 손실과 관련해 금융사들이 선제적으로 자율배상에 나설 것을 권고한 가운데 은행권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손실이 발생한 ELS 상품을 판매한 금융사가 일부라도 선제적으로 배상할 경우 투자자의 자금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이지만, 은행권은 투자자별 상황이 다양하고 자본시장법 상 한계로 인해 자율배상에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은행권은 금융당국이 이르면 이달 말 내놓을 배상기준안을 보고 배상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ELS 투자 손실과 관련해 금융사들의 자율배상을 사실상 권고한 것과 관련, 어떤 대응책을 마련할 지를 두고 부심하고 있다.

이 원장은 지난 4일 홍콩H지수 ELS 사태와 관련해 "2차 검사를 진행해 이달 중 금융회사와 소비자 간 손실을 배분하는 방안을 마무리할 것"이라며 "분쟁조정 절차와 별개로 금융사들이 일부를 자율적으로 배상하도록 하는 절차를 병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이튿날 열린 '2024년 금감원 업무계획 브리핑'에서도 이 원장은 "금융사들도 (불완전판매 혐의를)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며 "불법·합법을 떠나 금융권 자체적인 자율 배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소 50%라도 먼저 배상을 진행하는 게 소비자 입장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금융사의 내부결정으로 자체 배상안 마련이 어렵다고 한다면 특별히 불이익을 줄 생각은 없다"며 강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금융당국 차원에서 배상기준안 마련 이전에 선제적으로 금융회사에 배상을 요구한 것으로, 불완전판매 혐의가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사의 자율배상을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은행권은 분쟁조정 기준안이 마련되면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이지만, 선제적으로 자율배상안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사모펀드가 아닌 공모펀드인 만큼 상품 자체에 문제가 없고 수많은 투자자들의 투자배경까지 고려하면 자율배상 기준과 그 규모를 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감독 당국이 요구하는 자율배상은 과거 DLF(해외금리연계 파생 결합펀드) 사태에는 적용할 수 있겠지만, 공모펀드인 ELS의 경우 불특정 다수가 가입할 수 있어 배상을 결정하면 그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어 ELS 손실 사안에는 반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9년 DLF사태에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자율배상을 결정한 투자자는 각각 1천200여 명과 1천300여 명 수준으로 3천 명이 채 되지 않았다.

반면 이번 H지수 ELS의 은행권 판매잔액은 15조9천억 원으로 계좌수만도 24만8천 개가 넘는다.

은행권 관계자는 "사모펀드는 소수의 투자자 자금을 모집해 운용사를 통해 운영되는 펀드다 보니 모수가 적어 배상안 결정을 각 금융사별 이사회를 거쳐 진행이 가능할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공모펀드인 ELS는 가입자의 모수가 상당히 많고 재가입률이 90% 이상이라는 등 배상안을 결정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는 등 은행이 배상을 결정하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배임 문제가 불거지거나 자본시장법에 위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자본시장법은 불완전판매 등 예외적인 사유가 아니라면 판매사가 투자자의 손실을 보전해주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절차상 불완전판매 협의가 결론 나지 않은 상태에서 명확한 명분이 없이 자율배상을 추진하면 배임이슈도 불거질 수 있다.

더욱이 ELS는 판매규모가 크고 판매기간도 20년 이상으로 길어 배상규모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도 은행권 입장에선 부담이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이 판매한 H지수 ELS 상품에서 올 초부터 지난 2일까지 만기가 돌아온 것은 총 7천61억원어치다.

이 중 고객에게 상환된 액수는 3천313억원으로 평균 손실률은 53.1%에 이른다.

올해 상반기까지 도래 물량이 총 8조4천100억원인만큼 현 추세가 이어진다면 손실액은 4조원이 넘는다.

'홍콩H지수ELS피해자모임'은 은행이 ELS를 판매한 것 자체가 사기라고 주장하면서 100%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자율배상 비율을 얼마로 정하든 100% 이하면 피해자를 만족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은행권은 부담으로 느낀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만약 50%를 배상해주겠다고 하더라도 이 배상안에 합의를 할 수 있겠는가"라며 "어떤 분들은 여기에 합의할 수 있지만, 케이스가 너무 많이 때문에 100% 전원 다 합의가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소비자법(금소법) 시행 전에 가입하신 분과 시행 이후 가입하신 분들은 어떻게 배상 기준을 나눠야 하는지 등 고려해야 하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며 "ELS를 가장 많이 판매한 국민은행이 배상안을 내놓는다면 그에 맞춰서 비슷한 수준으로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sgyoon@yna.co.kr

윤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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