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문정현 기자 = 일본 증시를 바라보는 시장참가자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여전히 저평가됐다는 인식에 추가 상승을 낙관하면서도 버블 이후 최고가라는 레벨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기록적인 상승 행진에 자신만 소외돼서는 안 된다는 '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가 지배하는 가운데, 추가 상승을 기대하는 낙관론과 가까운 시일내 급격한 조정이 있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혼재된 분위기다.
◇ "45,000은 비현실적인 숫자가 아니다"
일본 증시의 앞날을 낙관하는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증시를 이끌어온 호재, 즉 글로벌 반도체주 호조와 개인 투자자 유입 확대, 중국 증시 부진에 따른 반사이익 등이 지속되면서 40,000 돌파는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고 보고 있다. 조만간 45,000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989년 말 38,915로 사상 최고가를 찍었던 닛케이 지수는 1990년 연초부터 급락하기 시작해 같은 해 30,000선을 하회했다. 사상 최고가를 찍을 때 해도 '내년(1990년)에는 45,000까지 간다'는 말이 나왔지만 실제 지수는 반토막에 가까운 20,000선을 위협받았다.
공교롭게도 이번에도 같은 숫자가 거론되고 있다. 스즈키 다카히로 하쿠넨 컨설팅 대표는 일본 경제 시사 주간지 다이아몬드 온라인과의 인터뷰에서 "(종전 고점인) 38,915는 일본 경제에 있어 저주와 같은 숫자로, 주가의 유리 천장이 돼왔다"며 "투자자들은 오랜 기간 무의식적으로 '이 가격은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주식을 매매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숫자를 돌파한 후에는 상승 모멘텀을 타기 쉽다며 "2월 말이나 3월 초에 닛케이 지수가 45,000에 이르러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45,000이 현재 시장의 주류 의견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씨티그룹증권도 올해 닛케이 지수 고점을 기존 39,000에서 45,000으로 상향조정했다. 씨티는 디플레이션에서 인플레이션으로의 전환, 기업 지배구조 개선 기대감, 중국 주식에서 일본 주식으로 자금흐름 변화 등으로 밸류에이션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낙관론자들은 일본 증시가 과거와 같은 고평가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 1989년과의 차이점이라고 평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1989년 닛케이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은 62.58배에 달했으나 현재의 16.47배 수준에 불과하다. 1989년 당시 예상 주당순이익(EPS)은 622엔이었지만 현재는 4배 수준인 2천373엔이다.
신문은 현재 주가 상승이 '과열 없는 상승'이라고 평가했다. 한때 수중의 자금을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해 거액의 손실을 입었던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과 같은 주주환원, 대형 M&A 등 성장 전략에 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기업 실적은 3년 연속 역대 최고치를 기록 중이고, 올해는 신 소액투자 비과세제도(NISA)라는 대형 호재도 등장했다.
◇ "반도체주 향방에 달렸다"
일본 증시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계속 달릴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하는 투자자들도 많다. 조만간 거친 조정을 겪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나오고 있다.
우선 주가와 경제와의 괴리가 크다는 점이 회의론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10~12월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기비 연율 환산으로 -0.4%를 기록했다. 직전 분기의 -3.3%에 이어 두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 기술적 침체에 진입했다.
12월 실질 가계지출은 전년 대비 2.5% 감소해 시장 예상치(2.2% 감소)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도 2%에 간신히 턱걸이해 20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제 펀더멘털이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배구조 개선과 NISA라는 일본 고유의 요인도 있긴 하지만 일본 증시 상승에는 반도체주 동향, 미국 증시 추이, 엔화 약세와 같은 외부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반도체주의 행보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IG증권은 미국 엔비디아를 주도로 한 반도체주 급등이 닛케이 지수 상승의 원동력이 됐다고 분석했다.
다만 반도체 기업의 성장 속도가 향후 둔화될 가능성이 있으며, 일부 일본 반도체주의 경우 고평가 상태라고 지적했다. LSEG에 따르면 어드밴테스트와 레이저테크는 12개월 예상 PER가 50배 정도이며, 도쿄일렉트론도 40배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32배를 웃도는 수치다.
IG증권은 "향후 AI와 반도체 수요가 급증한다고 해도 공급이 따라주지 않으면 기업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경기 전망이 불투명해지만 기술기업의 AI 투자에 브레이크가 걸려 수요가 단번에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닛케이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은 기대에 따른 부분도 큰 만큼 향후 불확실성이 늘어날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 증시의 향방이 반도체주에 달려있다는 것은 현재의 상승세가 일부 종목에 편향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추가 상승을 위해서는 중소형주의 강세가 필수적이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는 연준의 정책 경로의 불확실성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연구소는 "당초 시장은 올해 3월 금리가 인하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6월로 전망 시기가 미뤄졌다"며 "6월에도 금리가 인하되지 않으면 대혼란은 필연적이다. 6월이 (주가에) 큰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소는 미국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는 점이 가장 큰 불안 재료라고 말했다.
일본 증시가 계속 오르긴 하겠지만 변동성이 기존보다 커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시장 전문가인 도시마 이쓰오 도시마&어소시에이츠 대표는 닛케이 지수가 40,000을 돌파하면 해외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일단락될 것이라는 전망이 강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닛케이 선물의 단기 매매를 반복하는 투기세력들로 인해 변동성이 점점 높아져 플래시크래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말했다.
도시마 대표는 "일본 주식이 외부의 파도에 노출되면 일일 닛케이 지수 변동폭이 1천포인트를 넘을 가능성을 주의해야 한다'며 "이는 미국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jhmoon@yna.co.kr
문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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