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이장원의 뷰포인트] 일본 경제의 부활을 보며

24.04.18.
읽는시간 0

(서울=연합인포맥스) 필자가 사회생활을 막 시작할 무렵인 90년대 후반, 일본 경제의 미래는 세계적 초미의 관심사였다. 80년대만 해도 소니가 미국 문화의 자존심 컬럼비아 영화사를 인수하고, 도쿄를 팔면 미국 땅 전체를 살 수 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초호황기를 달렸으나 90년대 들어선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던 때였기 때문이다.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의 초입부였다.

당시 일본을 잘 아는 전문가는 이렇게 일갈했다. "일본의 문제는 경제가 아니다. 젊은이들의 활력이 떨어진 게 가장 큰 문제다. 상사맨들을 앞세워 세계 곳곳에서 돈을 벌던 개척정신은 온데간데 없고, 온실 속에 안주해 편안하게 살려고만 하더라." 서구 사회로부터 이코노믹 애니멀(경제동물)이라는 말까지 들으며 국부를 일궜던 일본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이 사라졌기 때문에 회복하기 어려운 경제불황에 빠질 것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지독한 엔고의 후유증과 부동산 폭락으로 긴 불황의 터널 속에 빠진 일본은 저출산과 고령화까지 맞물려 무려 30년 이상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 구마모토 TSMC 반도체 공장

그랬던 일본이 최근 들어선 부활의 노래를 부르며 경제 강국의 위상을 되찾고 있다. 코로나19가 종료된 이후 일본 경기가 좋아지며 근로자들의 월급봉투도 두둑해지고, 고질적인 저물가 현상도 해소됐다. 이에 따라 일본 중앙은행은 마이너스 기준금리 종료를 선언했다.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놓았던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화시켰다는 의미가 있다. 금리 인상은 곧 디플레이션의 끝을 선언한 것이고, 장기 불황을 탈출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워런 버핏을 위시해 세계적 투자자들의 돈이 일본으로 몰리고, 일본의 제조업은 미국과 합을 맞춰 부활을 선언하고 있다. 대만의 TSMC가 일본에 반도체 공장을 만들고, 잠자던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이 깨어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뒷배를 업고 일본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다시 잡은 셈이다. 80년대 부흥의 시기를 겪었던 일본은 다시 찾아온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국가적 사활을 걸고 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와 엔화 환율 추이

일본의 부활은 우리에겐 위협이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한일 간 경제 관계는 희비쌍곡선일 때가 많았다. 2차 세계 대전 때 일본이 패망하고 다시 일어선 계기는 불행히도 한국전쟁이었다. 반면 80년대 전성기를 달리던 일본의 전자업계 몰락의 시작점은 우리나라 반도체와 전자산업의 부흥이었다. 소니의 몰락과 삼성의 부상이 그 단면이다. 지금 시작된 일본의 부흥은 우리 전자와 반도체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국에 착 달라붙어 새로운 경제질서를 만들어가는 일본은 우리 경제에 가장 위협적 요소는 아닐까.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도전정신이 사라진 젊은이, 혁신과 변화가 없는 기업가 등 일본이 잃어버린 30년간 겪었던 키워드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가운데 일본 경제의 부활 소식은 간담을 서늘케 한다. 우리나라의 노동 생산성은 떨어진 데 비해 임금은 일본보다 높아지고 있고, 경제의 토대가 되는 잠재 성장률은 계속 떨어져 가고 있다. 해외 주요 기관들의 전망치를 보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올해 1%대 중반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성장엔진이 멈춘 나라는 미래가 불투명하다. 대통령이 바뀌는 5년마다 성장률이 1%포인트씩 떨어져 결국엔 제로 성장률까지 갈 것이라는 속설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닌지 두렵다.(편집해설위원실장)

jang73@yna.co.kr

이장원

이장원

함께 보면 도움이 되는
뉴스를 추천해요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와 KB Think 글자가 함께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입니다. KB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