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주도권 흔들리고 설계·파운드리 격차 못 좁혀
대규모 투자 예고…재무부담 제어 관건
(서울=연합인포맥스) 김학성 기자 = 올해는 삼성이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에 발을 들인 지 50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축포를 터뜨릴 분위기는 아니다. 삼성전자[005930] 반도체 부문(DS)이 지난해에만 15조원의 적자를 낸 데다 경쟁력에 대한 우려도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분기에는 반도체가 흑자 전환한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 업황 개선을 둘러싼 의견은 시시각각 엇갈린다.
'초격차'를 내세우던 삼성전자가 반도체 1위 자리를 빼앗긴 데 이어 2위를 사수하기에도 만만찮은 환경이란 평가가 나온다.
[출처: 삼성전자]
◇ 1위 내주고 2위 자리도 위태
24일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반도체 기업 매출 순위에서 삼성전자는 409억달러로 2위를 기록했다. 2년간 유지하던 1위 자리를 인텔(491억달러)에 내줬다.
전체 반도체 시장 규모가 11.7% 줄어드는 동안 삼성전자 매출은 세 배 이상인 35.9% 감소한 탓이다.
1위에서 내려온 삼성전자는 2위 자리 수성을 두고도 긴장해야 할 처지다.
인공지능(AI) 훈풍을 탄 엔비디아는 1년 만에 매출이 63.4% 증가하며 순위가 12위에서 5위권으로 뛰어올랐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은 지난달 정기주주총회에서 "업황의 다운턴(하강)도 있었고 저희가 준비를 못 해서 사업을 잘 못한 것이 있었다"며 주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AI 반도체의 핵심으로 꼽히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주도권을 놓친 것도 뼈아팠다.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AI 컨퍼런스 'GTC 2024'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삼성전자의 HBM을 시험하고 있다는 언급에 삼성전자 주가가 5.6% 급등한 장면이 이를 시사한다.
이튿날 황 CEO가 삼성전자의 HBM3E 제품에 서명을 남긴 사진이 공개되면서 주가는 3.1% 또 뛰었다.
당시 한진만 삼성전자 DS부문 미주총괄(부사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삼성의 HBM3E에 대한 황 CEO의 개인 승인 도장을 보게 돼 기쁘다"며 "삼성 반도체와 엔비디아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고 적었다.
AI 칩 시장을 지배하는 엔비디아에 아직 정식으로 제품을 공급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식 발표도 아닌 CEO의 서명 하나에 삼성전자가 반색하는 것이 씁쓸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4세대 제품 HBM3는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에서도 위기감이 감지된다.
과거 경쟁자보다 한두 단계 앞서는 것이 기본이던 삼성전자는 D램 선단공정에서 SK하이닉스에 역전을 허용했고, 낸드플래시에서도 수익성 격차가 축소됐다.
삼성전자가 근본적인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반도체 업황 변동에 따라 회사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형수 HSL파트너스 대표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 주도권이 많이 약해졌다"며 "조직 효율성이 예전만큼 나오지 않고 있으며, 경영진의 의사결정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진단했다.
[출처: 삼성전자]
◇ 반도체 설계·파운드리…미래 먹거리 현주소는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글로벌 1위를 달성한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5년 전 발표했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5천880억달러)에서 시스템 반도체의 비중은 약 78%로 관측된다.
메모리 반도체보다 시장 규모가 세 배 넘게 큰 시스템 반도체에서 삼성전자의 존재감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2022년 한국의 시스템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3.3%로 집계됐다. 1위 미국(54.5%)은 물론 대만과 일본, 중국에도 밀렸다.
국내 시스템 반도체 매출의 70% 이상이 삼성전자 몫이었음을 감안하면 아직 삼성전자가 선두권 기업들과의 격차를 줄이지 못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 설계와 더불어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에서도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2021년 1분기 17.4%에서 지난해 4분기 11.3%로 줄었다.
같은 기간 파운드리 1위 업체 TSMC는 점유율을 54.5%에서 61.2%로 늘리며 양사 간 격차는 12.8%포인트(p) 더 벌어졌다.
여기에 인텔은 2030년까지 삼성전자를 제치고 파운드리 2위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추격을 예고했다.
삼성전자는 2022년 "메모리 초격차를 확대하고 팹리스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에서 역전하면 반도체 3대 분야를 모두 주도하는 초유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공언했지만, 이러한 청사진은 아직 청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상태다.
삼성전자 수석연구원 출신인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파운드리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장기간 신뢰를 쌓아 큰 고객들을 잡는 게 중요하다"며 "파운드리 분사 등 설계를 분리하는 사업구조 개편이 있지 않으면 격차를 줄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시기"라고 덧붙였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대규모 투자로 위기 넘을까
이 같은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업황이 둔화한 지난해에도 반도체 시설투자 규모(48조4천억원)를 전년에 비해 오히려 늘렸고, 지난 15일에는 미국 텍사스주 반도체 공장 투자를 기존의 두 배 이상인 400억달러로 확대했다.
대규모 투자에 수반하는 재무부담을 제어하는 것이 중요한 숙제가 될 전망이다.
김웅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본격적인 업황 회복 국면에 진입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투자 확대는 부담"이라며 "미국 공장 설립 이후 칩 양산 과정에서 고임금과 인프라 부족에 따른 운영 비효율성으로 인해 높은 비용 부담이 동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시장 수요에 적기 대응하며 사업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hskim@yna.co.kr
김학성
hskim@yna.co.kr
함께 보면 도움이 되는
뉴스를 추천해요
금융용어사전
금융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