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돈은 피보다 진하다. 대부분 가족기업인 한국 재계, 재벌가의 민낯이다. 오너 3세와 4세 시대로 접어들면서 형제의 난, 남매의 난은 더 흔한 일이 됐다. 부자간, 모자간 갈등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경영권 쟁취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이들의 현실이란 비판도 나온다. 각자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돈 문제로 귀결된다. 이곳에서 소액주주나 국민의 입장은 고려 대상이 안된다는 게 씁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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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쁠 줄 알았는데 기쁘지는 않고 마음이 많이 아프다. 이런 일(가족 간 분쟁)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한미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한 임종윤 전 한미사이언스 사장이 지난달 주주총회 직후 밝힌 소회다. 한미그룹의 가족 간 분쟁은 한 편의 소설을 보는 듯했다. 임 전 사장은 남동생 임종훈 한미약품 전 사장과 동맹해 어머니(송영숙 한미그룹 회장), 여동생(임주현 부회장)과의 지분 경쟁에서 승리했다.
반전의 연속이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두 아들은 사장 보직에서 해임됐다. 두 아들이 OCI와 통합을 반대하며 법원에 낸 가처분신청도 기각됐다. 보유 지분이 많은 송 회장 측의 쉬운 승리가 예상됐지만, 주총 표 대결에서 상황이 역전됐다.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가 송 회장 측의 손을 들었으나 다른 가족과 소액주주의 표가 두 아들에 몰린 결과다.
임 전 사장 측이 승리하면서 한미약품과 OCI의 통합은 무산됐다. 두 아들이 전쟁에 나선 명분은 해결된 셈이다. 보직 해임됐던 임종훈 전 사장은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의 대표이사로 올라섰다. 어머니 송 회장과의 공동 대표 체제다. 이렇게 한미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봉합된 듯 보인다. 하지만, 가족 간에 남긴 말의 상흔까지 씻어낸 건 아녀서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들도 만만찮다. 가족이어서 싸움의 상처가 더 크고 깊을 수 있단 얘기다. 실제 글로벌 사모펀드의 지분 매입설까지 솔솔 흘러나오고 있어 아직은 안갯속이다. 현재의 승자가 영원한 승자가 되리란 보장은 없다.
금호그룹의 사례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금호는 창업자 박인천 회장의 타계 이후 2세 경영이 시작됐다. 장자 승계가 아니라 2세 형제간 그룹 회장 지위를 승계하는 식이었는데, 2000년대 초 3남인 박삼구 회장이 그룹을 맡으면서 형제간 갈등이 불거졌다. 박삼구 회장은 이전의 가족경영 수칙까지 수정하며 장기 집권을 노렸다. 여기에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등 한때 그룹을 재계 서열 7위까지 키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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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회장의 공격 경영에 반기를 들었던 4남 박찬구 회장은 결국 금호석유화학을 분리하고서 독자경영에 들어간다. 당시만 해도 3남 박삼구 회장이 승자였을 수 있지만, 지금은 4남 박찬구 회장이 승자로 평가된다. 박삼구 회장이 이끈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무리한 M&A의 결과물로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은 물론 아시아나항공까지 내주면서 지금은 중견기업 수준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반면에 당시의 패자 박찬구 회장이 이끈 금호석유화학그룹은 본연의 사업에 집중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한 결과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재계에서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가족 간 분쟁은 사실 너무나 흔한 일이 됐다. 삼성그룹과 한화그룹, 롯데그룹, 한진그룹, 효성그룹, 두산그룹 등의 가족 간 갈등 역사는 뿌리가 깊다. 해외 기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 등도 형제의 난을 피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런 재계의 사례를 되돌아보는 건 멀쩡한 기업이 가족 간 다툼을 계기로 몰락하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되기 때문이다.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지만, 기업의 안정성과 성장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 한국의 경우 재계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재계 한 임원에게 오너가 분쟁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들에게 국민 여론은 고려 대상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들만의 '쩐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우리 경제와 국민들에 피해를 주는 일이 없기만을 바라야 하는 걸까. (취재보도본부 기업금융부장)
chhan@yna.co.kr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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