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배수연 기자 =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사진) 의장은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다. 프린스턴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조지타운대에서 로스쿨을 마친 후 변호사가 됐다. 칼라일 그룹에서 8년간 파트너로 지내는 등 월가에서 경력 대부분을 쌓아온 금융전문가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2년 중반 연준에 합류했지만 연준을 이끌기에는 전임자들과 비교하면 거시경제 전문가로서의 경력이 모자란다는 평가를 늘 받아왔다.
하지만 학부 때 전공을 한 덕분인지 정치적인 감각은 탁월한 것 같다는 평가가 월가에서 이어지고 있다. 파월 의장이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하면서다. 특히 파월은 양적긴축(QT) 강도도 큰 폭으로 낮출 것이라고 밝히는 등 비둘기파적인 행보를 부쩍 강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연준은 1일(현지시간) 5월 통화정책 결정을 위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FFR) 목표치를 연 5.25~5.50%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작년 9월부터 6회 연속으로 기준금리가 동결됐다. 금리는 2001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금리 동결은 시장의 예상과 일치한다.
이와 함께 연준은 대차대조표 축소 규모를 하향 조정하기로 했다.
성명에서 "위원회는 6월부터 보유 중인 미국 국채의 월간 감축 한도(redemption cap)를 기존 600억달러에서 250억달러로 줄여 증권 보유량 축소 속도를 늦출 것"이라며 "기관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은 (월간 감축 한도를) 350억달러로 유지하고 이러한 한도를 초과한 상환 원금은 미국 국채에 재투자할 것(will reinvest any principal payments in excess of this cap into Treasury securities)"이라고 밝혔다.
연준이 미국 국채의 월간 감축 한도를 600억달러에서 300억달러 정도까지 낮출 것이라는 게 시장의 지배적인 관측이었다. 시장 유동성에 그만큼 여유가 생긴다는 의미다.
연준은 2022년부터 월간 감축 한도를 600억달러로 유지해왔다. 시장은 파월이 7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둘 것이라는 점도 주목했다. 파월 의장 등 연준 위원들은 오는 6월에 공개되는 점도표를 통해 연내 2차례 인하를 강하게 시사할 것으로 점쳐졌다. 3월 점도표에서 세 차례 가능성을 시사한 뒤 연준은 수세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거센 것으로 확인되면서다.
둔화 조짐을 보이는 소비 관련 지표가 7월까지 추가로 악화하면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강력한 빌미가 될 것으로 풀이됐다.
파월이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독립성이라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실제 정책적으로는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11월 대선이 임박한 시점보다 7월부터 기준금리를 인하해 자산시장 등에 훈풍을 불어 넣겠다는 게 파월의 노림수일 수 있다고 월가는 풀이하고 있다.
연준이 양적긴축의 강도를 절반 수준으로 누그러뜨린 점도 재평가받을 것으로 풀이됐다. 당장 하반기부터 미국 국채 발행 물량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연준이 미국채 수익률 방어에 나섰다는 평가도 이어질 전망이다. 연준이 미국채 만기물량을 재투자한다는 방침까지 밝히고 있어서다.
미국 유력 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당장 파월 의장의 FOMC 기자회견에 대해 정부 입맛에 맞았다고 평가했다. WSJ은 "이번 기자회견은 백악관과 재무부에서 환영받을 것"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은 소비자 신뢰를 위해,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막대한 연방 부채를 조달하기 위해 모두 낮은 금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논평했다.
파월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일축한 대목도 비둘파 변신을 뒷받침하는 대목으로 풀이됐다. 아직은 인플레이션 경로가 확실해지지 않은 마당에 파월이 선택지를 아예 봉쇄해버렸기 때문이다.
파월은 개인적인 견해라는 전제로 "올해 인플레이션에 대해 추가적인 진전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변호사 출신 다운 수사학이다. 연준 의장 발언의 무게를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수사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셈이기 때문이다.
파월의 이번 기자회견은 또 다른 형태의 미국판 '척하면 척'으로 규정될 전망이다. 시장이 연준의 완화적인 행보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어서다.
척하면 척에서 척은 그럴듯하게 꾸미는 태도나 모양을 일컫는다. 박근혜 정부 시절 최경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할 때 사용한 발언이다. 최 전 기재부 장관은 당시 '척하면 척'이라며 한은 기준금리 인하를 노골적으로 요구했고 금통위는 결국 백기 투항했다. 한은 금통위가 가계부채 급증의 공동정범이라는 불명예를 안는 신세로 전락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말이 '척하면 척'이었다. (국제경제부 기자)
neo@yna.co.kr
배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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