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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헌의 기업단상] "대한민국, 이대로 괜찮습니까"

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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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대한민국은 자타공인 제조업 강국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초정밀 산업과 중후장대 산업이 한국만큼 조화롭게 어우러진 국가는 많지 않다. 문제는 이 위상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제조업이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게 오히려 걱정거리다. 제조업이 흔들리면 한국 경제의 미래도 없다. 금융업을 비롯한 서비스업 비중을 빠르게 높여 제조업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학계의 구조개혁론은 지난 십수 년을 돌아보면 허울 좋은 얘기일 뿐이다. 여전히 현실은 제조업에 살고, 제조업에 죽는 구조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 비중은 지난 2020년 기준으로 28% 수준이다. 최근 25% 언저리까지 내려왔다는 통계도 있지만 아직 타 국가 대비 한참 높다. 우리와 경제구조가 유사한 독일과 일본의 비중은 꾸준히 20% 초반대에 머문다. 각 산업의 경쟁력이 유지된다면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세계 시장에서 절대 우위로 보였던 산업에서도 피 튀기는 전쟁이 시작됐다는 게 문제다.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이 비근한 예다.

인텔 비전 기자간담회

[연합뉴스 자료사진]

반도체 산업은 보조금 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미국은 세계 반도체 산업 지형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부었다. TSMC와 삼성전자도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대상이지만, 자국 기업 인텔의 부활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단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유럽연합(EU)과 일본도 보조금 경쟁에 가세했다. 중국은 일찌감치 국가 주도 반도체산업 육성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다. 미국이 반도체 판을 크게 뒤흔든 가운데 유럽과 일본, 중국까지 자국 기업의 입지를 넓혀가면서 글로벌 반도체 지형은 안갯속에 있다. 반도체의 맹주라는 한국 기업의 위상은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2024 오토 차이나' CATL 부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배터리 산업도 패권 전쟁 속에 있다. 세계 1위를 노리던 국내 배터리업체들은 중국의 기세에 점차 밀리는 분위기다.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CATL의 독주 속에 BYD가 2위로 올라서면서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K-배터리 3사의 점유율 합은 CATL 한 곳에 미치지 못한다. 중국의 독주를 견제하고 배터리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국내 업체들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손잡고 생산시설을 늘리려 하지만,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정체)이 발목을 잡고 있다. 중국 내수시장의 확장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라 중국 배터리의 독주 체제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얼마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한민국, 정말 괜찮은 겁니까"라고 물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이런 의문을 가져야 한다. 저성장 탓에 여러 문제를 안게 된 만큼 이젠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최 회장 발언의 타깃은 분명치 않다. 반기업 정서가 만연한 사회에 던진 하소연이거나, 글로벌 패권 전쟁 속에서도 뒷짐만 지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 등에 아쉬움을 전한 걸 수도 있다.

기자간담회 하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최근의 흐름만 보면 우리 정부 당국의 산업 지원은 경쟁국가에 비해 초라한 수준이다. 글로벌 산업 생태계가 시시각각 급변하는 상황에서도 정부 당국의 지원 속도와 강도는 너무나 굼뜨고 미약하단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반도체 보조금 문제만 보더라도 과거 자유무역 시절에는 반칙으로 인식됐지만, 지금은 새로운 질서로 굳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당국은 "보조금 지급은 없다"는 원칙론을 고수한다. 미국, 일본 등 세계 주요국이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 발전을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데 우리 정부는 기업 스스로 글로벌 전쟁에서 이겨내라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핵심산업과 경제, 정말 이대로 두더라도 괜찮은 걸까. (취재보도본부 기업금융부장)

chhan@yna.co.kr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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