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한국증시의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이 공개된 지 석 달여가 지났습니다. 정책이 발표되기 전부터 기대가 선반영됐던 만큼, 시장은 다소 차분해졌습니다. 강제성이 없다며 제도의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벤치마킹이 됐던 일본과 비교해보면 제도는 촘촘합니다. 금융당국 고민의 깊이도 더 깊었습니다. 이에 연합인포맥스는 한국과 일본의 밸류업 정책을 향한 '진짜' 시장의 평가를 네 꼭지에 걸쳐 송고합니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춤했던 일본 증시가 국내 증시와 현격한 차이를 보인 것은 최근 2년여 간의 일이다.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에도 2,000선을 돌파하며 우상향 곡선을 그렸던 코스피는 팬데믹을 계기로 니케이225와 저점을 함께 했고 빠르게 반등했다. 이후 반락의 골도 깊었다. 코스피와 달리 팬데믹 이후에도 떨어질 줄 몰랐던 일본 증시는 사상 최대치를 경신, 부러움을 샀다.
13일 연합인포맥스 세계주가지수(화면번호 6511)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이후 현재까지 니케이225는 331.50%의 상승률을 나타냈다. 이 기간 코스피 상승률은 142.57% 오르는 데 그쳤다.
지난 2월 정부가 발표한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의 한 축인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은 일본 증시에 대한 오랜 논의에서 출발했다.
특히 최근 금융당국이 발표한 밸류업 가이드라인은 정책적 빈틈을 찾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가이드라인이 아주 상세하고 많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며 "금융당국의 수장부터 적극적으로 나서서 상장사를 설득한다는 가정하에, 가이드라인에 A 학점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 日, 사실상 밸류업 지원제도 無…한국, 뭐가 달랐나
한국과 일본의 정책적 공통점은 공시의 자율성이다. 일본의 프라임·스탠다드 시장의 상장사들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매년 자유롭게 공시하듯, 국내 코스피·코스닥 시장 상장사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철저히 숫자에 기반한다.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자기자본이익률(ROE), 투하자본이익률(ROIC) 등 계량지표 중심으로 '현재'의 숫자를 기업 각자의 입맛대로 공시한다.
반면 국내 코스피·코스닥 기업들은 가이드라인을 따르게 된다. 경영현황과 사업전략, 자본수익성 등이 보여주는 현황에 더해 중장기 경영 목표, 향후 주주와의 소통계획 등을 담도록 제시했다. 더 나아가 숫자로 담지 못하는 지배구조 등 비계량 요소도 평가항목에 추가했다. 정량평가에 정성평가를 더해 기업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도록 한 셈이다.
이중 지배구조 개선안 공시는 오랜 시간 국내 자본시장의 폐해로 지목돼온 쪼개기 상장이나 일감 몰아주기 등 이른바 '터널링' 이슈가 있을 때 기업이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자율성에 기반한 양국의 밸류업 제도에는 페널티도 없다.
도쿄거래소(JPX)가 정책을 주도한 일본의 경우 관련 지수개발이나 상장지수펀드(ETF) 상장과 같은 지원은 있지만 이렇다 할 제도적 지원은 전무하다.
반면 금융당국이 밸류업 정책을 주도한 우리나라는 채찍보단 당근을 제시했다.
기업 이익의 주주환원을 위한 세제지원, 연기금의 참여를 위한 스튜어드십 코드 반영, 상장사에 세정 지원을 가능해지도록 한 표창 등 과감한 인센티브를 준 게 핵심이다.
일본은 도쿄거래소가 시장체계 개편과 관련한 자문단을 운영하며 상장사의 밸류업을 돕는다.
밸류업 정책의 성공을 정부 차원의 중장기적 시행에서 찾은 우리나라는 전담 지원체계를 마련하며 한발 더 나아갔다. 거래소 전담 조직과 자문단을 신설한 데 이어 밸류업에 어려움을 느낄 중소기업에 컨설팅을 제공하고, 밸류업 우수 기업을 위한 홍보와 공동 기업설명회(IR)도 마련하기로 했다.
◇ 결국엔 '피어프레셔'가 답
일본 증시가 오르기 시작한 2022년, 도쿄거래소는 시장체제 개편을 단행했다. 기존 5개 시장을 3개 시장(프라임·스탠다드·그로스)로 개편하고 그해 7월부터 본격적인 점검 회의를 통해 주요 추진과제를 살피도록 했다.
지난해 3월, 도쿄거래소는 상장사에 주요 추진과제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기업가치를 제고하려는 기업을 독려하고자 새로운 지수 'JPX Prime 150'이 출시된 것도 이즈음이다. 관련 ETF는 올해 1월 상장됐다.
이 기간 니케이225는 무려 40% 안팎의 상승률을 보였다. 일본 증시가 치솟은 이 무렵, 코스피는 정체됐다. 파키스탄 정도를 제외하곤 지수가 오른 아시아·태평양 국가를 찾기도 어려웠다. 일본증시가 더 돋보인 이유다.
강제성은 물론 공시 가이드라인, 세제 혜택조차 없는 일본의 정책을 고려하면, 국내 밸류업 정책을 마냥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하긴 어렵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니케이225가 코스피와 크로스 된 시점이 밸류업의 시장 개편과 맞물려 있긴 하지만, 일본증시의 상승은 사실 제도보단 과거 제로금리 시절부터 이어져 온 자본시장에 대한 저평가가 더 크다"며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정책적 효과에 대한 기대를 시장에 반영하려는 추세가 과하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피어프레셔(Peer pressure·동류집단압박)가 가장 효율적인 페널티라고 강조한다. 시장경제 메커니즘에 따라 경쟁사로부터 느끼는 압박을 통해 자발적인 행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상장사들 역시 동의하는 부분이다.
한 기업 재무 담당 임원은 "의무화된 강제성은 오히려 기업이 소극적으로 최소한의 형식적인 행동만 하게 만드는 발단이 되기도 하는 게 사실"이라며 "페널티를 대하는 기업은 방어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금융지주만 살펴보더라도 어느 기업이 먼저 무엇을 할 것이란 이야기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다"며 "법 개정 등이 수반돼야 하는 세제 혜택의 실효성을 따지기보단, 피어프레셔가 이번 정책의 핵심이다. 시장은 이 흐름에 결국 반응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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