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1등' 미래에셋 출신을 전진 배치한 '우리투자증권'이 10년 만에 재탄생한다.
우리금융지주는 이달 초 우리종합금융과 한국포스증권 합병을 통한 자기자본 1조원대 증권사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우리금융지주가 농협지주에 증권사를 매각한 지 10년 만에 증권업 재진출을 선언한 것이다.
과거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을 지내며 우리투자증권 인수를 주도했던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지난해 3월 취임하면서부터 예상됐던 부분이다. 우리금융지주에게 비은행 포트폴리오 다변화는절실한 상황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증권업 포트폴리오 확장은 불문가지였다. 증권업 이해도가 높은 데다, 성공을 맛본 지주회장과 맞아떨어져 우리금융지주로서는 어쩌면 이번이 전략적 결정의 적기였다. 마침 한국포스증권이라는 시장의 사실상 유일한 매물도 있었다.
대우증권 공채로 과거 1등 대우증권을 경험했고, 피인수 후 1등 미래에셋증권을 겪어본 남기천 대표 영입 등 우리금융지주의 증권업 재진출을 위한 작업은 차근차근 계속돼왔다. 남 대표를 비롯해 미래에셋 출신들이 우리금융지주 재탄생 증권사를 이끌게 된다. 과거 런던 재경관이던 임 회장과 대우증권 런던 법인장이던 남 대표의 인연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금융지주 규모와 비교할 때 자기자본 1조 증권사는 어울리지 않는다. 과거 성공 방정식을 통해 10년 내 업계 순위권의 초대형 IB로 키우겠다는 게 임 회장의 구상이다. 작았던 농협계열 증권사가 우리투자증권을 만나 오늘날의 NH투자증권이 됐던 길을 기억하는 이들은 우리금융지주가 제2의 우리투자증권 사명을 우리투자증권으로 가져가겠다는 발표 역시 예사롭지 않게 본다.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신임 회장 내정자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으로 들어서고 있다. 2023.3.24 [THE MOMENT OF YONHAPNEWS] hwayoung7@yna.co.kr
우리투자증권이 어떤 회사였던가. 과거 우리투자증권의 영광이 고스란히 흡수된 오늘날의 NH투자증권은 한국 증권사의 역사라 할 수 있다.
1969년 한보증권, 1975년 대보증권, 1983년 럭키증권, 1999년 LG투자증권, 2005년 우리투자증권.
1991년 동아증권, 1998년 세종증권, 2006년 NH투자증권, 2012년 NH농협증권.
2014년 12월31일 우리투자증권과 NH농협증권이 합병돼 출범한 NH투자증권은 대략 8개 증권사의 종합판이다. 우리투자증권의 역사까지 거스르면 총 17개 증권사가 모인 결집판이라 할 수 있다.
업계 1위였지만, 우리투자증권은 불운하게 자주 인수합병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우리투자증권을 알려면 LG증권과 우리증권을 나눠서 봐야 한다.
LG증권의 전신은 한보증권. 1969년 1월16일에 설립된 한보증권은 1975년 재무부가 증권시장 규모 확대에 따라 증권회사 공개대형화 방침을 확정, 생보증권을 흡수합병하면서 같은 해 7월1일 대보증권으로 발족하게 됐다.
럭키그룹의 계열사로 1973년 6월28일 출발한 국제증권은 1983년 11월4일 대보증권에 흡수합병되면서 럭키증권으로 상호를 변경한다. 1995년에는 그룹 CI통일에 따라 LG증권으로 상호를 바꾼 뒤 1999년 10월1일 LG종금을 흡수합병해 LG투자증권으로 새로 태어났다. 2005년 4월 우리증권에 흡수 합병되기 전까지 LG투자증권은 업계 1~2위를 다퉜다.
LG투자증권보다 작았지만 결국 LG투자증권을 삼킨 우리증권의 역사는 1954년 8월26일 설립된 대도증권으로 시작된다. 1954년 동방증권, 1955년 한흥증권으로 이름을 바꾼 뒤 1976년 2월 충남방적 인수, 1985년 11월 한일은행 인수 뒤 1991년 1월 한일증권으로 거듭난다. 1999년 3월 한빛증권으로 사명을 바꿨다가 2002년 우리증권으로 된다.
LG투자증권과 우리증권은 2005년 4월2일 우리투자증권이 됐다. 대우증권, 현대증권과 3파전을 형성할 정도로 컸지만, 공적자금이 투입된 탓에 우리투자증권의 역사는 채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농협 계열로 넘어갔다.
NH투자증권은 동아그룹계열로 1982년 고려투자금융이라는 단자회사에서 출발해 1991년 동아증권으로 증권사로 업종전환을 했다. 모 그룹의 위기 속에서 IMF와 함께 채권으로 큰돈을 번 개인에게 팔린 뒤 1998년 세종증권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세종증권은 당시 이름조차 낯선 '사이버월드'를 출범시켜, 대대적인 광고공세, 사이버트레이딩 수수료를 업계 최초로 낮추고, 고가의 이동단말기도 무료로 배포하는 등 파격 영업으로 업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2006년 NH농협 계열로 들어왔고, NH농협금융지주의 비은행 계열 강화와 함께 우리투자증권을 인수, 공룡 증권사로 거듭나게 됐다.
모그룹의 부침 속에 잦은 손바뀜이 있던 두 회사의 만남은 결국 성공을 증명했다. 통합 NH투자증권 전까지만 해도 증권회사간 합병이 '1+1=2'가 아닌 '1+1=0.5'라는 속설이 있었다. 이를 깬 첫 사례였고, 증권회사간 합병도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지금의 NH투자증권 간판에 우리라는 이름은 없지만, 그 안에는 우리 DNA가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금융지주가 다시 만들 우리투자증권에는 간판에만 우리가 있지, 실제로는 우리가 없다.
우리투자증권은 이름값 만큼의 무게를 버텨내야 한다. 아직은 자본여력도 적고, 과거 종금사들의 성공 방정식을 증명하기에도 적잖은 힘이 필요하겠지만, 해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투자증권이다.
임종룡 회장의 NH투자증권에 이은 두 번째 자본시장 인오가닉 성장, 남기천 대표를 비롯한 내로라하는 미래에셋맨들의 합류 등 시장에서 기대하는 눈이 너무 많다. (투자금융부장)
sykwak@yna.co.kr
곽세연
sykwak@yna.co.kr
금융용어사전
금융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