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다운사이징(Downsizing)'이 기업들의 최우선 경영전략으로 유행한 적이 있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조직 활성화를 극대화하기 위해 인력을 축소하는 차원을 넘어 불필요한 직무와 업무 등을 줄이는 방식으로 조직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저금리 등에 기댄 부채로 생긴 거품을 없애기 위해 다운사이징이 불가피했던 탓이다.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이슈를 계기로 다운사이징 필요성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과정에서 촉발된 저금리 현상으로 부동산영역을 위주로 기업부채와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20일 발간한 '우리나라 기업부채 현황 및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통해 "국내 기업부채가 지난해 말 2천734조원으로 2018년 이후 모두 1천036조원이나 증가했고, 연평균 증가율이 명목 성장률인 3.4%를 크게 웃도는 8.3%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기업부채 급등의 주범으로 부동산 대출을 꼽았다.
특히 금융권의 부동산업 관련 대출잔액이 2018~2023년 사이에 301조원 늘었는데, 같은 기간 전체 기업부채 증가액의 29% 수준에 달했다. 특히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 대출잔액 비율이 2017년 13.1%에서 2023년 24.1%로 급증했다. 유로지역(14.7%), 호주(12.0%), 미국(11.3%), 영국 (8.7%) 등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으로 자금과 부채의 쏠림현상이 유독 심하다는 뜻으로, 부동산 부채로 국가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외신들도 우리나라의 부동산 대출부실로 비은행 금융기관과 증권사 일부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을 쏟아내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한 외신은 한국이 부동산 침체로 PF 등의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부동산 관련 비은행 금융의 '그림자금융'이 한국 경제의 취약한 고리로 떠오르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물론 다운사이징이나 부채의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이 말처럼 쉽지 않다. 다운사이징을 지속하면 경제가 활력을 잃는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자산가치 하락으로 경제주체가 긴축에 들어서면 생산과 투자, 소비 등이 한꺼번에 쪼그라드는 리스크를 떠안아야 할 수도 있다. 과거 정책당국이 관련한 부채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제대로 정책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부동산 관련 가계부채와 기업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에서 부동산 PF 부실사태가 한국 경제를 위협하고, 금융 전반으로 위험이 이전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급기야 금융당국도 부동산 PF 옥석 가리기와 구조조정작업을 본격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부동산으로 국가 재원이 쏠리는 현상을 차단하고, 한국 경제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부동산 관련 부채를 다운사이징하고, 나아가 디레버리징을 진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저출산 현상 등과 맞물려 부동산 거품과 끊이지 않을 위기설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일부 고통을 감내해서라도 위험 요인을 사전에 제거하고 경제체질을 제대로 개선해야 할 때다. (취재보도본부장)
eco@yna.co.kr
황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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