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남승표 기자 = 경제성장률이 2% 부근에서 맴도는 우리나라에서 매년 두 자릿수에서 세 자릿수 성장을 하는 산업이 있다. 바로 전세사기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사고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는 지난 2018년까지 400여건이 채 안 됐으나 지난 2019년 1천600여건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후 2020년 2천408건, 2021년 2천799건, 2022년 5천443건 등 증가세를 보이다 2023년에는 단숨에 1만9천350건까지 뛰어올랐다.
보증사고 금액은 어떤가.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발급실적이 연간 20만 건을 넘어서기 시작한 2019년 보증사고 금액은 3천442억 원이었는데 2020년 4천682억 원, 2021년 5천790억 원으로 매년 증가하더니 2022년 들어서는 1조1천726억 원으로 마침내 1조 원을 돌파했다.
급기야 2023년에는 사고 건수가 1만9천350건으로 2만여건에 육박하고 사고금액은 4조3천346억 원으로 전년 대비 네 배 가까이 증가했다.
무주택자에게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보증금이 이처럼 심각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을 독려하고 안심전세앱을 통해 위험한 집주인을 걸러내라는 정도의 노력만 보이고 있다.
보다 못한 야당에서 지급가능한 보증금이라도 정부에서 먼저 지급하라며 선구제 후구상 방안을 담은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더 좋은 정책으로 야당에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세 차례 토론회를 개최하며 반대여론 조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23일 있었던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토론회, 사실은 개정안 반대토론회에서 국토부 실무과장이 제시한 불가 사유를 살펴보자.
첫째, 무주택자의 청약통장으로 조성한 주택도시기금을 다 써버리고 없어지면 문제가 발생한다. 둘째, 49조였던 주택도시기금 여유자금이 13조9천억 원으로 줄어 여력이 없다. 셋째, 기금운용계획을 변경해야 하는데 국회 승인이 필요하다. 넷째, 전세사기 피해주택 권리관계분석이 어려워 채권의 공정가치 평가가 어렵다. 다섯째, 공정가치를 평가해도 피해자들이 만족하기 어려울 수 있다.
주택도시기금 여유자금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왜 그런가. 예금금리는 최고 2.8%를 지급하면서 대출금리는 1%~3%인 역마진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주택기금 결산자료를 보면 저리 대출로 기금에서 채워야 하는 융자보조원가충당금만 4조7천700억 원이었다. 2년 전에는 4조9천600억 원을 충당금으로 설정했다. 이러니 여유자금이 버틸 재간이 없다.
만약 집을 짓거나 사려고 돈을 빌리는 이들에게 지원하느라 보금자리를 잃은 이들을 지원할 여력이 없다면 정부 예산에서 예비비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규모가 정부에서 인정한 것만 1만7천여명이다. 이들의 주거 안정에 사용한다고 해서 정부에 시비를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권리관계 분석이 어렵다느니 공정가치를 산정할 수 없다느니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러면 그 어려운 일을 전세사기 피해자가 직접 해야 하느냐고 되묻고 싶다.
결국 국토부와 산하기관의 주장은 전세사기 피해에 대해 안타깝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정부의 심드렁한 대응 속에 전세사기는 연일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전세보증사고는 올해 1분기에만 1조 천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0% 증가했다. 지난해 2만 가구에 이어 올해는 4만가구까지 피해가 늘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세사기는 성장산업이 아니라 사양산업, 멸종산업이 되어야 한다. 국토부의 방향 전환을 기다린다.
(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전세사기 피해자 등이 8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21대 국회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2024.5.8 kjhpre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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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승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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