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처음'은 언제나 중요하다. 첫걸음마, 첫 번째 생일, 처음 떠난 여행, 첫 승진 등. 당사자는 물론 주변 지인들에게도 이런 이벤트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고, 자연히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재계에서도 비슷하다. 주요 인사의 새해 첫 경영 행보나 첫 현장 방문 등은 언제나 화제가 된다. '첫 번째'라는 단어가 주는 상징성이 강해 해당 인물의 이미지는 물론, 향후 경영 행보 등과 연관 지어 해석되는 경우가 흔하다. 분야와 내용을 막론하고 '처음'에 특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최근 삼성전자[005930]의 HBM 제품이 미국 반도체기업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달 HBM3E 8단과 12단 제품의 테스트 결과가 나왔는데 낙방했다는 내용이다. 몇 주 전부터 증권가를 중심으로 소문이 돌더니,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한 외신 보도로 이어졌다.
5세대 HBM3E, 그중에서도 12단은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000660]와의 시장 점유율 격차를 좁힐 '비장의 무기'로 삼고 있는 제품이다.
이를 핵심 고객사인 엔비디아에 납품해야 'AI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기회를 엿볼 수 있다. 삼성이 반드시 성사시켜야 하는 '필수 선결 조건'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에도 좋은 소식이 물 건너가며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게 됐다.
불합격 사유로는 발열과 전력 소비 문제가 지목됐다. 삼성이 자신하던 기술적 완성도에 물음표가 따라붙은 것이다. "삼성이 HBM 시장에서 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 더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고 지적한 소식통 발언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진 건 삼성전자가 DS부문장을 전영현 부회장으로 교체하고 내부 분위기 쇄신에 나선 직후다. 전 부회장으로선 반도체 총괄 자리에 앉은 지 사흘 만에 엔비디아 퀄 테스트 낙방 이슈에 휘말리게 됐다. 사실상 부임 이후 첫 뉴스다. 책임 소재에선 벗어나 있을지 몰라도 스타트가 유쾌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원포인트'로 DS부문장을 교체한 배경엔 이번 인사를 통해 'HBM 실책' 이슈를 털어버리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반도체가 부진했던 시절에 부문장을 맡았던 경계현 사장(현 미래사업기획단장)이 모든 부정 이슈를 끌어안은 채 물러나고, 전 부회장이 새롭게 시작하는 그림이 사실상 '베스트'다.
경 사장은 지난달 사내 경영현황 설명회에서 임직원들에게 "인공지능(AI) 초기 시장에서는 우리가 승리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등 HBM 사업에서의 실책을 인정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활약은 잊히고 최근의 아쉬움만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사임 형태긴 하지만 사실상 반도체 부진의 책임을 지고 DS부문장 자리에서 내려왔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반도체 업황이 살아나기 시작한 시점에, 특히 고대하던 엔비디아 HBM 납품이 막 성사되려던 시기에 전 부회장이 DS부문장으로 등판한 것 역시 반도체 사업에서 확실한 반전을 꾀하기 위한 의도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가 이례적으로 "HBM 공급을 위한 테스트가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며 조기 진화에 나선 것도 연장선상으로 풀이된다.
결과적으로 전 부회장은 반갑지 않은 소식과 함께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사람은 바뀌었지만, 아직 반도체 부진 이슈를 끊어내진 못했다.
지금의 상황이 장기화하면 인사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제대로 된 '결과물'을 가져와 흐름을 바꿔야 하는 이유다. 앞서 삼성전자 측은 DS부문장 교체에 대해 "불확실한 글로벌 경영 환경하에서 대내외 분위기를 일신해 반도체의 미래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밝혔다. (기업금융부 유수진 기자)
sjyoo@yna.co.kr
유수진
sjyoo@yna.co.kr
함께 보면 도움이 되는
뉴스를 추천해요
금융용어사전
금융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