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오후 5시37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SK㈜[034730]의 자기 회사 주식(자사주) 소각 공시가 올라왔다. 보유 중인 자사주 69만5천626주, 금액 기준 754억원어치를 소각하겠다는 내용이다.
해당 공시를 두고 재계 안팎에서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온 건 이날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 소송 2심 판결 결과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 자사주를 소각해도 되느냐는 의문이자 우려다. 사연은 이렇다.
[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이날 2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전체 재산의 35%에 해당하는 1조3천808억원을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분할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위자료 20억원은 별도다. 1심 판결은 물론 시장의 예상, 나아가 SK 내부의 관측도 한참 뛰어넘은 금액이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에 대한 노 관장 측의 기여가 인정된다는 취지다. 해당 주식은 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본 1심 재판부와 판단이 달랐다.
시장은 빠르게 반응했다. 잠잠했던 SK㈜ 주가가 순식간에 15% 이상 폭등했다. 최 회장의 경영권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고 본 것이다.
SK그룹은 최 회장이 지주사 SK㈜와 그 밑의 SK이노베이션, SK스퀘어 같은 중간 지주사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다. 최 회장이 SK㈜의 단일 최대 주주로, 지분율은 17.73%(3월 말 기준)다.
대법원에서 해당 판결이 확정될 경우 최 회장이 자금 마련을 위해 SK㈜ 주식을 일부 처분해야 할 수도 있다. 경영권 리스크 우려가 있어 어떻게든 피하려 할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아예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물론 그에 앞서 SK실트론 같은 계열사 주식 매각과 대출 등이 우선 고려될 가능성이 높다. SK㈜ 주식을 처분하더라도 백기사를 구해 넘기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상황에선 자사주가 큰 힘이 될 수 있다. 회사가 직접 보유하고 있을 땐 의결권이 없지만 매각 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경영권 분쟁이 불거질 경우 우호 세력이 매각해 경영권 방어 무기로 쓸 수 있다. SK㈜의 자사주는 3월 말 기준 1천868만1천226주로 발행주식총수의 25.3%에 달한다.
실제로 SK㈜는 2003년 소버린 펀드로부터 공격받았을 당시 자사주를 하나은행, 신한은행 등에 매각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전례가 있다. 그런 SK㈜가 판결 당일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으니 재계 안팎에서 놀랄 수밖에. 심지어 최 회장도 SK㈜ 이사회 멤버(대표이사)다.
공교롭게도 날짜가 겹쳤을 뿐 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SK㈜는 작년 11월1월 SK증권과 자사주 취득 신탁 계약을 체결하고 향후 6개월간 1천2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기로 했다.
당시 취득하는 자사주 전량을 이익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신탁계약을 통한 취득으로, 소각 진행 시 별도의 이사회를 열고 해당 내용을 결의 및 공시하기로 했다. 그게 바로 30일이었다.
실제로 SK㈜는 이달 초까지 1천2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을 끝내고 지난 2일 신탁계약을 해지했다. 다만 이달 들어 주가 하락이 지속되며 1천200억원을 주고 사들인 자사주(69만5천626주)의 가치가 한 달 새 754억으로 떨어졌다.
SK㈜는 2022년 3월 발표한 '중기 주주환원 정책'에 따라 매년 일정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하고 있다. 당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2025년까지 매년 '시가총액의 1% 이상'의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자사주 소각은 '옵션'으로 달아뒀지만 2년 연속 매입분 전량을 소각했다. 주가 부양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자사주 소각은 주당순이익 개선으로 이어져 자사주 매입, 현금배당보다 더 효과가 확실한 주가 부양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자사주 매입은 그대로 진행하더라도 소각엔 좀 더 신중할 거란 해석이다.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기업금융부 유수진 기자)
sjyoo@yna.co.kr
유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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