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지난해부터 보험업계가 도입한 새 회계제도(IFRS17·IFRS9)를 둘러싼 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으면서 회계법인을 향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 주도로 일괄 도입된 IFRS17을 준비하는 지난 10년 동안, 컨설팅 비용으로만 수백억, 매년 수십억씩을 감리 비용으로 받아 가는 회계법인의 전문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험사 감사인 90% 장악한 '빅4'…한화·삼성·현대해상 작년 감사 비용만 40억↑
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재 보험회사(생명보험사 22곳·손해보험사 31곳)의 감사인은 회계법인 '빅4'(삼일·삼정·안진·한영)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생명보험·손해보험 업권별 상위 10곳 보험사만 살펴보면 더욱 뚜렷하다.
생보사의 경우 삼성생명을 비롯해 교보생명·미래에셋생명·DGB생명이 삼일, 한화생명과 DB생명·동양생명은 한영, 신한라이프는 삼정, 농협생명은 안진을 선택했다.
손보사는 삼성화재와 현대해상·농협손보가 안진, DB손보와 KB손보·한화손보·롯데손보는 삼일, 메리츠화재와 흥국화재가 한영을 감사인으로 두고 있다.
IFRS17을 적용한 첫 결산이 이뤄진 지난해, 이들 보험사의 감사용역 비용은 직전 연도와 비교해 대다수가 상승했다. IFRS17의 전문성과 복잡성을 고려한 결과였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감사용역과 비(非) 감사용역 계약을 더 해 각각 50억 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지출했다. 이들 보험사의 감사용역 계약은 40억 원 안팎에서 책정됐다.
교보생명도 40억 원 넘는 비용을 지출했다. 신한라이프와 미래에셋생명은 20억원 안팎을 썼다.
손보사 중에서는 현대해상이 40억 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지불하며 회계법인에 가장 많은 돈을 썼다. 감사용역 계약은 30억 원이었지만 비감사 용역 계약이 컸다.
삼성화재는 35억 원의 감사용역 비용을 지출했다. DB손보와 메리츠화재는 26억 원 안팎을 지출했다. 한화손보와 롯데손보는 20억원 안팎이었다.
연간 감사 비용을 떠나 IFRS17 도입을 앞두고 진행된 컨설팅 비용은 더욱 막대하다.
한 보험사 고위 관계자는 "대형사일수록 컨설팅 비용이 많이 든다. 적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백억의 컨설팅 비용을 제도 도입을 준비하는 몇 년간 투입했다"며 "지금의 논란을 만들고자 컨설팅받았겠나. 모두가 처음이지만, 충분히 준비한 시간이 있었는데 이 정도의 혼란이 지속될지는 몰랐다"고 꼬집었다.
◇엔론·대우조선·헝다까지…회계법인 vs 계리법인 '밥그릇' 다툼도
한때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손꼽혔던 에너지기업 엔론은 분식 회계가 밝혀지며 2001년 파산했다. 엔론의 회계 감사를 담당했던 회계법인 아서앤더슨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영업정지를 당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미국은 엔론 사태가 벌어진 이듬해 사베인즈옥슬리 법안(Sarbanes Oxley Act)을 제정했다. 엔론 같은 거대 기업의 회계 부정이 사회에 끼칠 피해를 막고자 발의한 법안으로, 이는 지금의 미국이 회계 개혁에 나설 수 있는 디딤돌이 됐다.
그런데도 회계법인에 대한 신뢰도 하락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헝다그룹 사태와 관련해 10여년간 감사를 맡았던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과 일부 영업 중단을 예고한 상태다. PwC는 지난해 호주에서도 조세 스캔들에 휘말린 바 있다.
국내에선 10여년 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가 일어났을 때, 감사인이었던 안진은 금융당국이 회계법인을 대상으로 조치한 가장 큰 제재를 받았다.
일각에선 IFRS17과 관련한 보험회계가 수년 뒤 회계법인의 신뢰도를 끌어내릴 수 있는 스캔들이 될 수 있다고도 우려하고 있다.
특히 회계 영역에서도 가장 전문적으로 평가받는 보험회계에 대한 전문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올해 IFRS17 기준 첫 결산 보고서가 나오는 과정에선 예전 계리법인이 담당했던 영역을 회계법인들이 직접 담당했다. 지난해부터 실적 부풀리기 논란이 나오면서 회계법인들은 과거에 하청 형식으로 계리법인에 주던 일감을 대다수 직접 해결했다. 이는 계리 담당 인력 다수가 회계법인으로 이직한 배경이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계리 전문가를 확보하는 게 중요했고 꽤 많은 충원이 이뤄졌다"며 "IFRS17을 앞두고 당연한 조치였지만 인력을 뺏긴 계리법인, 보험사 사이에선 앓는 소리가 많이 나왔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반대편의 이야기는 다르다.
한 계리법인 관계자는 "요즘은 대형 계리법인도 쉽지 않다. 중소형 계리법인은 도산의 위기"라며 "최근에는 감독회계의 영역인 킥스(K-ICS) 검증도 회계법인이 한다. 밖에서는 밥그릇 싸움처럼 보이겠지만, 처음부터 다윗과 골리앗이었다"고 지적했다.
가장 답답한 곳은 보험사들이다. 연간 수십억, 컨설팅 비용까지 최근 몇 년간 수백억 원의 투자를 단행한 보험사들은 감사인만 믿고 있지만, 속으론 걱정이 태산이다.
전일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는 보도참고자료를 냈다. 보험사의 재무제표는 독립된 감사인의 엄격한 확인을 거쳐 공개되는 정보로서, 인위적인 조작은 어렵다는 게 골자였다. 보험계약마진(CSM)과 예실차, 더 나아가 최근의 실적에 대한 의구심은 기우라는 뜻이었지만, 혹자는 이를 보험사 재무제표의 책임이 감사인에 있음을 명확히 하는 내용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한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는 "감사는 주주, 투자자를 대상으로 확실한 숫자를 제공한다는 인증"이라며 "현재의 보험회계를 둘러싼 논란은 답답한 부분이 많다. 모든 평가가 상대적이다 보니 우리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 책임은 감사인과 보험사가 함께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jsjeong@yna.co.kr
정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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