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한창헌의 기업단상] '진짜' 밸류업이 시작되려나

24.06.11.
읽는시간 0분

(서울=연합인포맥스) 3년여 전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 상장에 앞서 물적 분할을 선언했다. 주력 사업 중 하나였던 배터리 사업이 LG에너지솔루션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라 LG화학 주가는 급락했다. 100만원을 웃돌던 주가는 1년도 안 돼 반토막이 났다. 주주들의 거센 반발에도 물적 분할은 강행됐다. 회사의 경영 판단이란 이유로 주주들은 법 구제도 받지 못했다.

현행 상법은 '주주의 이익'보다는 '회사의 이익'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상법 382조의3 '이사의 충실의무'를 보면 "(기업)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여기에 '주주'는 쏙 빠져 있다.

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제공]

주주 입장에선 악법인 상법 382조 개정안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다.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해야 한다"고 돼 있다. 지난 21대 국회 때도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이다. 다른 법안에 밀려 표류하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지금은 그때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기업 밸류업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정부와 코드가 맞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열린 민관 합동 투자설명회(IR)에서 "개인적으로는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는 무조건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해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도입하자는 얘기가 있다. 세법과 상법 등 밸류업에 관한 세제 인센티브, 지배구조와 관련한 구체안에 대한 의견 수렴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밸류업 기관투자자 간담회 참석한 기관투자자 관계자들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밸류업 기관투자자 간담회에서 기관투자자 관계자들이 금융위원회 김소영 부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4.3.14 superdoo82@yna.co.kr

재계는 정부와 정치권의 상법 개정 움직임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들은 소액주주가 충실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고소·고발이 남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규모 투자 등에 대한 기업의 의사결정도 어려워질 것으로 봤다. 회사와 일부 주주의 이해가 상충할 때 이사회가 사법 리스크를 우려해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할 것이란 주장이다.

재계의 이런 움직임은 회사와 소액주주의 대립으로 몰아가려는 여론전이나 다름없다. 현행 상법은 사실 '회사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기업 총수 등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한 법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에버랜드 전환사채와 삼성물산 부당 합병 건이 진정 회사의 이익을 추구한 의사결정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경영권 승계를 통해 지배주주의 이익은 극대화됐지만, 일반주주에는 피해를 준 대표적인 사례다.

현행 법으로는 해당 의사결정을 한 이사에게 아무런 책임도 물을 수 없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 이익'을 추가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반주주가 피해를 보는 의사결정을 이사회에서 견제할 수 있게 된다. 이사회의 의사결정이 전체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검토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우리나라 재계의 병든 지배구조를 치료할 방법이 법 개정 말고는 딱히 안 보이는 게 현실이다.

기업 지배구조의 바이블 격인 '주요 20개국(G20)·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업 거버넌스 원칙'에 따르면 좋은 거버넌스는 주주권리가 제대로 행사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주주와 외국주주 포함한 모든 주주가 공평하게 대우받는 것이다. 정부의 밸류업 의지에도 시장 반응이 미약한 건 취약한 거버넌스 탓이 크다.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수십년간 지켜봐 왔듯이 기업 자율에 맡겨선 거버넌스의 후진성이 개선되기 어렵다. 상법 제382조의 개정이 진정한 밸류업 프로젝트의 시작일 수 있다. (취재보도본부 기업금융부장)

chhan@yna.co.kr

한창헌

한창헌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와 KB Think 글자가 함께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입니다. KB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