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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세연의 프리즘] '구정'과 '신정'의 한국거래소

2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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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약 8년 전 '신정'(新鄭)과 '구정'(舊鄭)은 금융위원회 '넘버2'였다. 2016년 당시 전직과 현직 부위원장의 성이 같아서 금융위원회 내부에서 만들어진 말인데, 구정은 당시 정찬우 전 부위원장, 신정은 정은보 부위원장이었다.

두 사람은 출신도 스타일도 달랐지만, 금융위에 이어 한국거래소라는 공통점이 하나 더 생겼다. 2016년 금융위 부위원장에서 한국거래소의 5대 수장이 된 정찬우 이사장에 이어 정은보 8대 이사장이 지난 2월 취임했기 때문이다. 최근엔 신정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정은보 이사장은 지난 2월 거래소 부산 본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밸류업 프로그램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정책의 전반적인 틀을 마련하는 금융당국과 함께 한국거래소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기업의 상황에서 새로운 정책이 부담되지 않도록 입장차를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개인투자자와의 설명회에도 나왔고, 해외 IR에도 열심히 였다. 당국과 기업 사이를 바삐 오가며 현실적인 정책 마련을 위해 직접 움직였고, 주주환원에 적극적인 기업, 유가증권시장의 대기업, 코스닥 시장의 혁신성장기업과의 간담회 자리도 마련했다. 한국거래소 실무 조직 또한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정책도입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을 만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정은보 이사장은 28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총무처, 재무부, 재경부, 기재부, 금융위를 거친 정통 관료다. 구정 정찬우 전 이사장은 대통령인수위원회 출신으로 금융위에 잠시 몸담기는 했지만, 금융연구원에서 오랫동안 연구를 해온 학자 출신으로 볼 수 있다.

과거 금융위 부위원장이 구정에서 신정으로 바뀌는 동안 회의를 여는 횟수가 확 늘어났고, 인사도 쉬쉬하는 분위기가 됐다.

정은보 이사장에게 인사는 위에서 정하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원칙이라는 전언이다. 밑에서 인사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한다는 게 신정 스타일이라는 게 측근들의 공통된 얘기다. 부위원장 취임 당시에도 금융위 업무의 절반이 인사라는 생각이 컸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개인의 바람과 조직의 구성을 잘 조율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 구정의 스타일과는 극명하게 대비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정은보 이사장 취임 후 한국거래소 인사는 꽤 오래 걸렸다. 임원은 물론 실무진까지도 그의 장고가 거듭됐다. 인사 첫 키워드는 세대교체.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다.

정은보표 1기 한국거래소 인사는 7명의 신임 집행 간부 발탁으로 요약된다. 집행간부 11명 중 7명을 신임으로 갈아치웠다. 과거 금융감독원장 시절 부원장 4명 중 3명을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던 것과 같은 파격적인 인사 스타일을 보여준 셈이다. 젊은 피로 수혈됐고, 그동안 많은 경력을 쌓아온 내부 전문가들이 발탁됐다.

거래소 내부에서는 '당황'스럽다면서도 '황당'하지는 않다는 반응이 있었다. 될 사람이 됐을 뿐이라는 여론도 많았다. 사실 정은보 이사장이 2021년 금감원장 취임 당시 자칫 어수선해질 수 있었던 조직 분위기를 인사로 정리하는 취지로 임원 전원에 일괄 사표를 요구한 일화가 유명하기도 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2024.5.24)

(서울=연합뉴스) 한국거래소 정은보 이사장(사진)이 지난 24일 오전 서울사옥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거래소의 핵심전략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2024.5.27 [한국거래소 제공]

구정은 부임하자마자 비서실장 등 어떤 수행원도 없이 거래소 과장, 대리를 만났다. 보직이 있는 부장부터는 만남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오간 가감 없는 대화는 정 이사장과 직원들만 안다. 이사장 중심으로 권한을 집중시켰고, 조직 규율과 형식을 강조했던 이전 이사장과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종이 없는 회의,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르겠다"며 잦은 회의를 없앤 구정의 파격 같은 실험은 이전 7대 이사장까지도 계속됐다.

꽤 오래전 얘기를 다시 꺼내는 건, 구정의 화려한 등장과 왠지 기시감이 드는 신정의 등장이 무관치 않아서다.

정찬우 전 이사장은 취임당시 후보 추천에서 선임까지 2주간의 속전속결로 여전한 그의 파워를 확인시켰다. 낙하산 인사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거래소 내부에서 정 이사장이 '어디를 마지막까지 고사했다. 어디를 가려다가 거절했다' 등의 얘기가 나오는 것은 그만큼 힘 있는 정 이사장에게 기대하는 게 크다는 의미였다.

이번 정은보 이사장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하마평을 뒤로하고, 정은보 이름 석 자가 등장한 뒤 얼마 안 돼 신정의 시대를 예고했고 현실이 됐다.

거래소 직원들은 뜻밖의 이사장에 적잖이 놀라면서도 반긴다. 사실은 힘 있는 이사장을 반기는 게 더 크다.

그런데 밸류업의 중심이어야 할 거래소가 잘 안 보인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제는 정은보의 시간이다. (투자금융부장)

sykwak@yna.co.kr

곽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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