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6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글로벌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피벗'에 본격적인 방아쇠를 당겼다. ECB의 통화정책 방향 전환은 코로나 팬데믹 과정에서 풀린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한 2022년 7월 이후 거의 2년 만이다. 스위스 중앙은행이 지난 3월 유럽 주요국 중에서 가장 먼저 금리 인하 시작을 했고, 5월에 스웨덴 중앙은행도 금리를 내렸다. 선진국뿐 아니라 일부 신흥국도 피벗 레이스에 동참하는 모양새다.
이렇다 보니 한국은행도 금리 인하 대열에 합류할 것이란 기대가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다. 채권시장이 먼저 반응하면서 국고채 3년물 지표금리가 연중 최저치인 연 3.16%까지 떨어졌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연 3.50%보다도 34bp 낮다.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가격에 선반영한 셈이다.
대통령실까지 가세하면서 금리 인하에 힘을 보탰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16일 방송에서 "통화정책에 영향을 주는 물가 지표인 근원물가가 최근 안정화하고 있고, 다른 국가에서 금리를 인하하는 상황이 나타난다"며 "통화정책을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근원물가가 2%대 초반으로 낮아졌고 우리보다 물가가 높은 국가도 금리를 내린 만큼 한국은행도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질수록 실제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늦어질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대목이다. 금리 인하 기대가 맞물리며 벌써 자산 가격이 꿈틀하고 가계대출도 급증하는 모양새다. 통화량도 11개월 연속 증가세다. 이는 현 수준의 통화 긴축을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실제로 코스피 지수가 2년 5개월 만에 2,800선을 탈환한 데 이어 국고채 금리도 연중 최저를 기록 중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도 다시 꿈틀대는 등 각종 자산 가격이 요동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집값이 고개를 들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도 6조원이나 급증하는 등 각종 불안 조짐도 여전하다.
한국은행이 굳이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아도 시중에 유동성이 공급되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인하 카드를 쓰면서까지 추가로 돈을 풀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책무인 물가안정을 확신하기 어려운 시점에 금리를 내려 인플레이션 심리를 자극하는 것도 한국은행으로서는 부담이다. 더욱이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릴 경우 국내 외환시장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고 이는 재차 고물가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여당 관계자와 대통령실의 금리 인하 주장은 그만큼 한국 경제가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현시점의 고금리 현상은 코로나 팬데믹 과정에서 공급된 대규모 유동성과 이에 따른 고물가를 둔화시키고 높아진 부동산가격을 진정시키는 불가피한 정책 과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물가를 감안한 실질금리(명목금리-물가)가 이제 갓 마이너스에서 벗어난 시점에 바로 기준금리를 내려 다시 마이너스 금리를 만들 경우 자칫 저금리의 부작용이 되풀이될 가능성도 크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누차 밝힌 것처럼 통화정책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금리를 내린다고 모든 경제 난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지금과 같은 고환율·고물가 상황에서도 기준금리 인하가 모든 민생문제를 풀어주는 '전가의 보도'처럼 작용할 것으로 착각하진 않는지 곱씹어봐야 할 때다. (취재보도본부장)
eco@yna.co.kr
황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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