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4월 총선 이후 정국이 여전히 혼란스럽다. 국회를 장악한 야당은 개문발차(開門發車) 뒤 연일 강공 태세다. 여당은 '원외(院外) 투쟁'으로 맞서고 있지만 108석에 불과한 의석수로는 역부족이다. 하늘과 땅만큼의 큰 입장 차이를 쉽사리 극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고자 하는 일도, 지향하는 정책과 방향도 완전히 다르다. 협의, 합의, 협치는 요원하다.
그래도 세상은 굴러가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한 데 누군가는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그 중심은 공무원들이다. 공직기강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근간인 경제가 쉼 없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더 집중해야 한다. 위험 요인은 빠르게 제거하고, 경제 흐름을 저해하는 불편한 요인들은 신속하게 개선해야 한다. 경제라는 혈맥이 막힘 없도록 해야 할 책무는 공무원들, 특히 경제 관료들에 있다.
수출이 살아나고, 내수도 회복되면서 경기흐름도 개선세를 보인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하지만 실제 국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여전히 냉각 상태다. 고금리 상황은 여전하고, 가계부채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데이터상 물가와 체감물가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실질소득은 감소세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자산을 불려보고 싶지만, 정부가 꿈을 부풀게 한 정책들은 답보 상태다.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좋아지는 듯하면서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애매모호한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의 입장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특히 경제관료들이 내놓은 메시지는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개인플레이가 아닌 팀플레이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벌어진 일들을 보면 왜 이러나 싶다. 같은 정부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 시장은 혼란스러워한다. 다양한 의견이라고 얼버무리면 신뢰는 깨진다.
지난 5월 중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미국 뉴욕에서 꺼내든 '6월 공매도 일부 재개 추진' 발언은 대표적이다. 투자설명회를 위해 뉴욕을 찾은 이 원장은 "개인적인 욕심"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계획은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이 원장의 발언을 전해 들은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내심 불쾌한 심경을 보였다고 한다. 공매도 제도 관할은 금융위원회다. 김 위원장은 평소에도 자신의 심경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보고를 받은 김 위원장은 "본인이 그렇게 말했다는데 어쩌겠냐. 입장을 물어온다면 우리는 모르는 일이니 말한 사람한테 물어보라고 해라"라고 했다고 한다. 그의 성향상 매우 이례적인 반응이었다.
며칠 뒤 대통령실도 직접 반박하는 일이 벌어졌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불법 공매도 문제를 해소하고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질 때까지 공매도는 재개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고 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면서 이 원장의 발언을 '그저 개인적인 희망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최근 주식시장에 외국인 투자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공매도 폐지 정책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공매도 금지를 치적으로 평가했다. 대통령실 입장에선 이 원장의 '돌출 발언'을 일종의 '불충(不忠)'으로 본 셈이다.
최근에는 성태윤 정책실장이 주인공이 됐다. 성 실장은 16일 방송에 출연해 종합부동산세를 폐지하고, 상속세율을 30% 수준으로 낮추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또한 정부와 여당에서 입장 정리가 되지 않는 주제였다. 특히 종부세는 여당인 국민의힘에서조차 개편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지방교부금 문제 때문에 폐지까진 아니라는 입장이다. 상속세 역시 당정 모두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수치까지 딱 밝히는 데 대해선 조심스러워한다. 세제개편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에선 상속세 개편과 관련해 더 신중한 입장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상속세 개편이 필요하다면서도, 늘 그 전제조건으로 '사회적 공감대'라는 말을 덧붙여왔다. 상속세 개편으로 파생될 논란이 부자 감세를 넘어서는 이슈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최 부총리는 '경제정책의 사령탑이 부총리인가 아니면 대통령실과 부총리의 쌍두마차 체제'인가라는 질문에 "사령탑은 기획재정부이고 부총리다"라고 했다. 기자의 질문 자체도 불쾌했겠지만, 논란을 키운 대통령실에도 그리 좋은 감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성태윤 실장은 또 "우리의 경우 통화정책의 기준이 되는 근원 인플레이션이 이미 2.2%"다. 물가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안정화된 상태"라며 "상당 부분 금리인하가 가능한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가급적 언급 자체를 꺼리는 통화정책에 대한 생각을 당국자가 가감 없이 던진 것이다. 당장 채권시장에서는 정부의 금리인하 압박으로 해석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가 독립적으로 결정한다"는 말로 응수했다. 한은이 '독립적'이라는 말을 꺼내 든 것은 오랜만이다.
경제부총리, 금융위원장, 금감원장, 한은 총재를 두고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경제부총리 시절 'F4'로 명명했다. 윤 정부 초기 레고랜드 사태가 금융시장을 강타하자 매주 모여 회의하고, 일치된 목소리를 내고 대책을 마련해 추진하면서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데 F4가 큰 역할을 했다는 자긍심에서 붙인 것이었다. F4와 더불어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경제수석 또한 경제팀을 이루는 핵심 멤버들이다.
그런데 총선 이후 조율되지 않은 개별 입장이 많아지는 모양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시장은 누가 최고 권력자와 거리가 가까운지를 중심으로 판단하게 된다. 정부의 일관성 있고 신뢰 있는 입장이 아닌 물리적인 거리로 파헤쳐야 하는 상황이 되는 셈이다. 경제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불확실성이다. (정책금융부장)
pisces73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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