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진우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정부와 여당의 전방위적인 금리 인하 압박에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렸다.
이 총재가 여전히 생각보다 양호한 성장과 불투명한 물가 상황으로 단기간 내 금리 인하는 어렵다는 신호를 보낸 직후 대통령실과 정치권이 조기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나선 탓이다.
이 총재는 정부와 활발하게 소통하며 그동안 별다른 마찰을 빚은 적이 없다. 하지만 자칫 금리 정책의 독립성이 흔들릴 수 있는 국면을 마주하게 됐다.
◇금리인하 고삐 죄는 대통령실·여당…한은 '호출'
21일 국회에 따르면 국민의힘 민생경제안정특별위원회는 오는 27일 유상대 한은 부총재를 불러 기준금리 인하와 관련한 회의를 할 예정이다.
국민의힘에서는 최근 연일 금리 인하 주장이 나왔다. 3선 중진인 송언석 의원이 7월에라도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포문을 연 데 이어 현재 수장인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도 금리 인하를 촉구했다.
그 사이 대통령실도 가세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전 세계적인 통화정책 흐름이나 국내 상황에 비춰볼 때 금리 인하가 가능한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당이 금융통화위원이기도 한 한은 부총재를 직접 불러 금리 정책과 관련한 논의를 한다는 것도 적지 않은 압박이다.
총선 이후 극단적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의 동의 없이 추진할 수 있는 경기 정책이 마땅치 않은 만큼 통화정책에 대한 압박이 커졌다는 추정도 나온다.
◇시험대 선 이 총재…시장은 정부에 베팅
이 총재는 그동안 이른바 'F4' 정례회의로 상징되듯, 정부와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엇갈린 목소리를 좀처럼 내지 않았다. 레고랜드 사태 긴급 유동성 지원이나 주택금융공사 출자 등도 별다른 갈등 없이 진행됐다. 금융당국의 시중 금리 조정에 대해서 반발하는 금통위원도 있었지만, 이 총재는 문제 삼지 않았다.
이 총재로서도 현 상황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 총재는 지난 12일 창립기념사에서 "물가가 제대로 안정되지 않으면 실질소득의 감소, 높은 생활물가 등으로 취약계층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라면서 "섣부른 완화 기조로의 선회 이후 인플레가 재차 불안해져 다시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 감수해야 할 정책 비용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1분기 예상밖 성장으로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를 한층 덜어낸 만큼 긴축적 통화정책을 당초 예상보다 더 유지해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해당 기념사 직후 송 위원과 성 실장, 황 비대위원장 등의 발언이 잇달아 나왔다.
이 총재는 지난 18일 물가설명회에서 금리 결정은 금통위가 독립적으로 하며, 물가 상황도 5월의 진단에서 달라진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물가 여건이 금리를 내릴 수 있게 변했다는 대통령실의 진단과는 거리를 둔 셈이다.
통화정책 전환의 핵심 변수인 외환시장 상황 등 거시 여건도 금리 인하 신호를 내기에는 아직 무리다. 달러-원 환율은 이날 1,390원 선을 다시 넘어서기도 하는 등 불안하다.
물가와 환율이 급격하게 안정되지 않는 이상, 8월 등 기존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금리 인하가 현실화하면 한은이 여당의 압박에 입장을 바꿨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채권시장은 결국 정부와 여당의 입김이 통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는 모양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2% 내외로 연저점 수준까지 내렸다. 국채선물시장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연일 대규모 순매수에 나서는 등 금리 인하 베팅이 완연하다.
외국계 투자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실과 여당이 계속 압력을 가하면서 해외에서 8월 인하에 베팅하는 움직임이 강화되는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다만 "최근 태국에서도 총리가 금리 인하를 압박했지만,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지 않았다"면서 "정부의 압박으로 금리가 실제 인하될 걸로 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jwoh@yna.co.kr
오진우
jwoh@yna.co.kr
함께 보면 도움이 되는
뉴스를 추천해요
금융용어사전
금융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