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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지금] 텅텅 비어가는 맨해튼…국민연금은 웃는 이유

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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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연합인포맥스) 지난 달 미국 뉴욕시 맨해튼에선 부동산 업계를 술렁이게 하는 거래가 발생했다. 맨해튼 중심가인 미드타운에 있는 상업용 건물이 매입가보다 67%나 폭락한 가격에 매각됐기 때문이다.

부동산 개발회사 릴레이티드펀드매니지먼트는 지난 2018년 맨해튼 44번가 서쪽 구역인 헬스키친(Hell's Kitchen)에 위치한 10층짜리 빌딩을 1억5천300만달러에 매입했었다. 이 빌딩이 지난달 남다르리얼티그룹과 엠파이어캐피털홀딩스에 팔렸는데 매각가는 5천만달러도 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매입가의 3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다.

릴레이티드펀드가 매각한 맨해튼 44번가 건물

[출처 : 구글맵 캡쳐]

뉴욕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어려워진 것은 이미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지금까지는 대체로 평가 가치만 깎던 추세였다. 장부상으로는 가치 하락분을 반영했지만, 기준금리가 내려가고 근로자들이 사무실로 복귀할 때까지 버티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남아 있었다.

반면 최근에는 하나둘씩 포기하고 보유 빌딩을 '땡처리'라도 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금리인하 시점이 멀어지면서 부채 부담이 가중되는 데다 기존에 투자됐던 펀드들의 만기도 가까워지자 손을 들고 손절에 나선 투자자가 늘었다는 점이 달라진 부분이다.

미국 부동산 전문매체 더리얼딜은 "릴레이티드의 거래는 최근 몇 년간 고금리와 코로나19 팬데믹이 상업용 부동산 업종을 갉아먹으면서 사무용 건물 가격이 얼마나 매섭게 내려갔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만기가 다가오고 비용이 급등하면서 부동산 소유주들은 부실 자산으로 만드느니 손절매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미국 상업용 부동산 관련 모기지의 대출 연체율은 6.4%까지 치솟았다. 2018년 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맨해튼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극심한 공실률에 시름을 앓고 있다.

부동산 회사 CBRE의 지난 4월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맨해튼의 사무용 공간 총 4억6천300만 평방피트 중 20%나 비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월가가 있는 다운타운과 미드타운 중 남부의 공실률은 훨씬 더 나빴다. 다운타운 지역의 공실률은 23%에 육박하며 신규 임대 건수는 연초 3개월간 약 60만 평방피트에 불과했다. 이는 장기 평균의 3분의 1에 불과한 수치다. 미드타운 남부의 공실률은 25%에 육박했다.

그나마 맨해튼에서 상업용 건물이 정상에 가깝게 돌아가고 있는 곳은 미드타운이 거의 유일하다. 뉴욕의 대표적 관광지인 타임스 스퀘어와 브라이언트 파크, 록펠러 센터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등이 밀집된 미드타운은 재택근무가 자리 잡아 가고 있음에도 수많은 출퇴근 직장인으로 언제나 사람이 붐빈다.

CBRE의 마이클 슬래터리 분석가는 "맨해튼에는 미드타운이 있고 그 밖의 모든 구역이 있다"며 "(특히 미드타운의) 파크 애비뉴(park avenue) 일대는 가용률(availability rate)이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가용률은 전체 사무실 면적 중 실제 임대할 수 있는 면적의 비율이다. 그만큼 미드타운 파크 애비뉴의 사무용 건물은 공실률이 낮다는 뜻이다.

맨해튼이 갈수록 '미드타운과 그 외'로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는 출퇴근의 용이성이라고 꼽는 시각이 우세하다. 맨해튼의 집값이 급등하면서 주변 지역인 뉴욕시의 퀸즈나 브루클린, 뉴저지주의 허드슨강변 주거지역으로 주택 수요가 분산되는 만큼 출퇴근의 용이성이 핵심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맨해튼 그랜드 센트럴역 일대의 사무용 건물 상당수가 오래됐음에도 주목받는 데는 이같은 이유가 있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랜드 센트럴역 일대는 가로로는 42번가부터 45번가, 세로로는 파크 애비뉴에 위치하고 있다. 앞서 CBRE가 분석한 맨해튼의 오피스 생존 지역이 정확히 교차하는 지점이다.

CBRE에 따르면 그랜드 센트럴 일대는 2022년 초부터 올해 초까지 맨해튼의 다른 어떤 하위 상업용 건물보다도 통상 매달 22만5천 평방피트의 사무실이 더 채워져 있었다.

그랜드 센트럴은 퀸즈와 연결되는 두 개의 통근 열차가 있는 데다 맨해튼 최신식 빌딩과 비교하면 더 임대료가 낮다는 장점도 있다. 게다가 연식이 오래됐지만 그만큼 고풍스러운 양식으로 꾸며진 건물이 많아 고전미를 찾는 임대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슬래터리 분석가는 "최근 기업들이 자주 묻는 말은 '직원들을 어떻게 사무실로 다시 불러들일 것인가'이다"라며 "일부는 매력적인 편의 시설을 제공하고 다른 일부는 좋은 위치를 내세우지만, 모든 점을 충족시킬 수 없다면 교통이 좋은 사무실을 제공하는 게 가장 선호된다"고 말했다.

여기서 국민연금의 안목이 빛이 난다.

국민연금이 2017년 뉴욕 최대 부동산 개발회사 SL그린으로부터 지분 27.6%를 5억2천500만달러에 사들인 원 밴더빌트 빌딩은 뉴욕에서 관광 명소로서뿐만 아니라 사무 공간으로도 가장 각광받는 곳 중 하나다.

그랜드 센트럴역 바로 앞에 위치한 원 밴더빌트는 올해 초 기준 가용률이 11.7%에 그친다. 맨해튼 전체 가용률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한때 사무 공간 가동률은 95%까지 올라갔으며 평균적으로 90% 이상의 공간은 채워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은 적어도 원 밴더빌트에 관해서만큼은 가치 폭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93층 높이의 신식 건물인 원 밴더빌트는 탁 트인 전망대 때문에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지만 그랜드 센트럴역 바로 앞이라는 위치와 보기 드문 현대식 고층 건물이라는 점 때문에 기업과 직장인들도 선호한다.

JLL 리서치의 야콥 로덴 분석가는 "원 밴더빌트는 귀한 물건"이라며 "'초 핵심적인(ultra-core)' 자리에 위치한 데다 채광이 특히 좋은 초고층 빌딩이라는 점은 매우 제한적인 점이기 때문에 많은 입주 기업이 흥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진정호 뉴욕 특파원)

jhjin@yna.co.kr

진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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