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기사화 원하지 않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개인 SNS(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문구다. 최 회장은 첫 게시물을 올린 지난 2021년 6월 이후 3년 넘게 이 문장을 프로필에서 지우지 않고 있다.
[출처:최태원 회장 SNS]
대중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만든 '개인'의 공간인 만큼, 언론 보도로 화제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실제로 최 회장은 야식과 취미를 즐기는 모습 등 평소 대중이 볼 수 없었던 소탈한 일상을 SNS에 공개해왔다. 그 중엔 가족과 함께하는 모습도 있었다. 저 문장을 방패 삼아 공적 역할과 사적 영역을 어느 정도 구분하려는 의도로 읽혔다.
그랬던 최 회장에게 최근 변화가 감지됐다.
프로필 속 문구는 그대로지만, SNS를 사실상 '셀프 홍보 창구'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SK그룹을 둘러싼 위기론이 빠르게 확산하는 상황에서 최 회장이 본인의 언어와 행동으로 그룹이 나아갈 방향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최 회장은 1일 앤디 재시 아마존 CEO, 팻 겔싱어 인텔 CEO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지난달 22일 미국으로 '인공지능(AI)·반도체' 출장을 떠난 그가 이들과 만나 사업 협력을 논의했다는 의미다. 겔싱어 CEO는 친분을 보여주듯 최 회장 어깨에 손을 올린 모습이었다.
[출처:최태원 회장 SNS]
여기에 최 회장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최전방의 거인들. 이들이 엄청난 힘과 속도로 세상을 흔들 때 우리도 백보, 천보 보폭을 맞춰 뛰어야 한다"며 "SKT와 아마존이 함께 만든 앤트로픽, SK하이닉스와 인텔이 함께하는 가우스랩스처럼 우리나라 유니콘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적었다.
'해시태그(#)'도 빼먹지 않았다. 두 CEO의 이름은 물론, 아마존과 인텔, SK하이닉스 등 회사 이름을 하나하나 적었다. 제일 마지막엔 '위기는 기회다'란 해시태그도 달았다.
SK그룹 측이 "최 회장이 지난주 미국 아마존, 인텔 CEO와 만나 AI, 반도체 등 디지털 사업에서의 협업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했지만, 시간상 SNS 게재보다 늦어 사실상 '뒷북'이나 다름없었다. 최 회장 멘트는 없는, 후속 설명 정도였다.
이렇게 최 회장은 미국에서 누굴 만나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개인 SNS를 통해 가장 먼저 소식을 전하고 있다. 사실상 '셀프 홍보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재계에서 그룹 총수나 최고경영자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는 시장에 분명한 시그널을 보낸다. 주가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총수들이 공개된 자리에서 입을 잘 열지 않고, 이들의 일정 대부분이 비밀에 부쳐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SK에 적용하면 최 회장이 만난 사람과 나눈 대화, 주고받은 인사이트 모두 SK그룹의 미래를 예상하는데 직접적인 힌트가 된다. 이는 그룹 차원의 공식 대응이나 익명의 관계자 멘트와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갖는다. 기자 입장에선 당연히 '기삿거리'다.
지난 1998년 취임해 올해로 '27년 차' 총수인 최 회장이 이를 모를 리 없다. 특히 그는 종종 본인 이름으로 기사를 검색해보는 등 언론 보도에 민감한 인물이다. 그런 최 회장이 SNS를 통해 진솔하면서도 분명하게 자신의 행보를 공개하는 건 최근 불확실성이 극대화한 SK그룹의 상황과 무관치 않다고 볼 수 있다.
SK그룹은 지금 위기다. 최 회장(화상 참석)을 비롯해 주요 계열사 CEO들이 1박2일 동안 '끝장 토론' 형태의 회의를 진행했고,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를 한가득 안고 각 사로 돌아갔다. 시장에선 SK이노베이션-SK E&S 합병을 비롯해 각종 합병, 매각, 분할 시나리오가 쏟아져 나온다.
크고 작은 변화를 앞둔 혼란한 상황에서 그룹 총수가 중심을 잡고 꾸준히 같은 메시지를 내는 건 시장 안정과 구성원들의 동요를 막는 데 매우 효과적이란 평가다. SNS는 플랫폼 특성상 최 회장이 느낀 소회를 보다 허심탄회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최 회장은 지난달 27일에도 동일한 행동을 했다. 그땐 샘 올트먼 오픈AI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와 각각 회동한 사진을 업로드했다.
그가 올린 사진과 메시지는 사실상 이튿날부터 진행된 경영전략회의 예고편이나 다름없었다. 최 회장은 "AI라는 거대한 흐름에 심장박동이 뛰는 이곳(미국)에 전례 없는 기회들이 눈에 보인다"며 "모두에게 역사적인 시기임이 틀림없다. 지금 뛰어들거나, 영원히 도태되거나"라고 적었다. 그리고 SK CEO들은 3년 내 AI와 반도체 투자를 위한 재원 80조원을 확보하기로 뜻을 모았다.
앞서 최 회장은 지난 4월 미국 엔비디아 본사를 찾아 젠슨 황 CEO와 회동한 사실을 개인 SNS로 처음 공개하기도 했다. 그가 직접 인증한 '엔비디아와의 굳건한 협력 관계'는 SK하이닉스 주가 빠르게 우상향하는 원동력이 됐다.
특히 지난해 11월 '2030년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후 5개월 만에 처음 올린 게시물로, SNS 활동 재개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다. (기업금융부 유수진 기자)
sjyoo@yna.co.kr
유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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