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남승표 기자 = 일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건설업계에 기현상이 나타났다. 단일 공구 토목사업으로는 역대 최대로 평가되는 가덕도 신공항 부지조성공사 입찰이 두 차례 연속 유찰됐다. 한편에서는 일감이 없다며 정부 예산을 늘려달라고 조르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애써 마련한 일감을 외면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추정사업비 10조5천억 원에 달하는 가덕도 신공항 부지조성 공사는 지난 두 차례의 입찰에서 현대건설 컨소시엄 한 곳만 참가해 유효경쟁이 성립하지 못했다. 사업을 주관하는 국토교통부는 세 번째 입찰의 시행 여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건설업계가 일감이 없다면서도 가덕도 신공항 사업참가를 기피하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공사 규모가 단일 공구로는 너무 방대하며 둘째, 공사 기간이 규모에 비해 너무 촉박하다는 것이다.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숙원사업으로 출발해 국제박람회 유치라는 사명까지 더해지다 보니 가덕도 신공항이 뜻하지 않게 난공사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건설업계가 이렇게까지 입찰을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싱가포르에서 작은 병원 하나만 준공하더라도 규제와 감독이 엄격한 곳에서 무사히 공사를 마쳤다며 보도자료를 뿌려대던 건설업계가 다른 곳도 아닌 국내 토목 현장에서 사업을 무사히 관리할 자신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내 최장 현수교인 이순신대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차나칼레대교를 준공한 DL이앤씨, 부산항 신항을 민자사업으로 제안해 그 어떤 건설사보다 부산 인근 항만공사에 밝은 삼성물산, 부산 엘시티와 여의도 파크원 등 초고층 건축물을 잇달아 준공하며 기술력을 과시한 포스코이앤씨 등이 가덕도 신공항 앞에서는 몸을 사리는 현상이 의문을 낳고 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 아래에 자리 잡은 대우건설도 그렇다. 리비아, 나이지리아 등 정정이 불안한 아프리카에서도 사업수주를 마다하지 않던 세계 경영의 DNA가 국내 사업장 앞에서 위축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대형 국책사업 기피는 앞으로 국내 대형건설사의 해외 수주에서도 부정적인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자국에서 진행되는 사업도 자신 없다고 꺼리는 건설사에 일감을 맡길 해외발주처가 그리 많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기업가 정신에 대해 '위험을 무릅쓰고 포착한 기회를 사업화하려는 모험과 도전의 정신'이라고 정의했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 기업가 정신은 주로 건설 현장에서 발휘되고는 했다. 고인이 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이 남긴 "해 봤어?"라는 말이 한국의 기업가 정신을 상징하는 문구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일감이 없어 머나먼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찾아가 수주하던 고 정주영 회장이 작금의 건설업계를 바라보면 무엇이라 말할지 궁금하다.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고종필 가덕도신공항 기본계획수립 용역 책임기술자가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서 열린 가덕도신공항 건설사업 설명회에서 사업개요 및 추진경과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4.2.7 yatoya@yna.co.kr
spnam@yna.co.kr
남승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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