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1. 삼성전자 요새 분위기가 좋다. 주식시장에서의 이야기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주가 상승이 심상찮다. '마의 저항선'으로 인식됐던 8만원을 훌쩍 넘더니 9만원에 바짝 다가섰다. 여차하면 2021년 1월의 고점(9만6천800원)까지 달려갈 기세다. 잠정치이기는 하지만, 2분기 영업 실적도 매우 좋다.
지난달 주가가 오르는 동안 삼성전자 임원들의 자사주 취득도 활발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에만 26명의 삼성전자 임원이 자사주를 매입했다. CEO급(전영현 DS부문 부회장)에서 CFO(박학규 사장), 주요 사업부 사장까지 다양한 포지션의 임원들이 참여했다. 매입 금액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고른 분포를 보인다.
#2. 네이버 상황은 삼성전자와 반대다. 여전히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다. 올해 개인 투자자들이 한국증시에서 가장 많이 산 종목이 네이버라고 하는데, 주가는 거꾸로 간다. 올 상반기에만 2조원 넘는 개미 돈이 이 종목에 투입됐다. 최근 약간의 주가 반등은 있었지만, 올해 고점과 비교해 20% 넘게 급락한 상태다. 3년여 전 역대 최고가(46만5천원) 대비로는 3분의 1 토막이 났다.
개미의 눈물이 흘러 넘치는 상황에서 네이버 임원들의 자사주 매도 소식은 분통 터질 일이다. 지난 두 달 사이에만 이 회사 세 명의 임원이 네이버 주식을 판 것이 공시로 확인된다. 매도 금액은 각 1억원 수준에서 2억원대까지 작지 않은 규모다. 투자자들 입장에선 불난 집에서 부채질하는 격이다. 주가가 오를 때 회사 임원이 기습적으로 팔아도 우려를 키우는 법인데, 끝 모를 하락세에서 파는 건 뭐라고 설명도 잘 안된다. 네이버와 여러 가지로 닮은 꼴 기업이 된 카카오 상황도 비슷하다. 주가 하락 속에 회사 임원들의 자사주 매도 소식이 심심찮게 들린다. 내부자의 주식 매도, 개미 입장에서 이것만큼 위협적인 소식이 또 있을까.
출처:연합인포맥스
자사주 매도할 수 있다. 주가라는 게 시장 참가자들이 주식을 사고팔면서 정해지는 건데 회사 오너나 대주주, 임직원이라고 주식을 못 팔 이유는 없다. 자본시장에서 주식을 거래하는 건 주주의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기본적인 시장 룰은 있어야 한다. 자본시장은 기업 내부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이다. 소액주주의 피해를 줄이려면 내부자를 일정 수준에서 통제하는 것 이외에 딱히 방법이 없다.
미국의 사례를 보자. 엔비디아의 창업자 겸 CEO 젠슨 황, 테슬라의 창업자 겸 CEO 일론 머스크가 자사 주식을 파는 건 뉴욕시장에서 흔한 일이 됐다. 젠슨 황 CEO는 지난달에도 엔비디아 주식 30만주를 매도했다. 약 2천300억원 규모다. 젠슨 황이 주식을 처분한 시점은 엔비디아 시가총액이 3조달러를 처음 넘어섰을 때였다. 황 CEO를 포함한 엔비디아 임원들이 올해 상반기에 매각한 자사주 규모만 1조원을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엔비디아 주가가 최근 고점을 찍고 하락세지만, 황 CEO나 경영진을 탓하는 목소린 찾아보기 어렵다. 사전 신고제 덕분이다. 젠슨 황은 지난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엔비디아 주식을 팔겠다고 사전에 신고했고, 최근 그 계획에 따라 집행한 것이라 충격은 크지 않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젠슨 황의 주식 매도는 SEC의 내부자거래 사전거래 계획을 따른 것이다. '10b5-1'이라고도 불리는 사전 규제다. 이 룰의 규제 대상은 의결권이 있는 주식 10% 이상을 소유한 주주와 임원 등이다. 이들은 주식을 매도하기 30일 전에 주식 매각 시기와 가격, 주식수 등을 보고해야 한다. 그리고 매매계획 제출 시점부터 주식 매도까지 90일의 대기 기간을 가져야 한다. 적어도 주식 매각 120일 전에 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이런 내부자들에 대한 사전 규제가 없다. 현행법으로는 대주주와 임원이 주식을 매도하고서야 내부자 거래 여부를 알 수 있다. 주식을 팔고 나서 공시하는 사후 공개 방식이기 때문이다. 소액주주는 갑자스런 수급으로 주가가 급락해도 이유를 모르다가 5거래일 이상 지나고서야 확인할 수 있는 구조다. 주가가 오를 때도 수급 정보가 제한적인 건 마찬가지다. 국내에서도 자본시장법 개정 추진 등의 방식으로 내부자 거래에 대한 사전 신고제 도입이 논의됐던 적이 있다. 새 국회가 열린 시점이라 금융당국의 결단을 비롯한 재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내부자와 소액주주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것. 이 또한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젝트의 작은 실천일 수 있다. (취재보도본부 기업금융부장)
chhan@yna.co.kr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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