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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가 사람들] 전직 은행원이 말하는 '은행의 실패'

2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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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은행 제도는 실패했다'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지난달 펴낸 책 '부채로 만든 세상'은 이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은행이 맞이한 위기의 원인을 신용 팽창에서 찾았다. 빚으로 산 집, 빚으로 일으킨 기업, 빚으로 지탱하는 국가를 유지해주는 은행 시스템이 얼마나 허점투성인지 지적하며 은행 제도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몇 년 전 벤 버냉키, 필립 딥비그,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등 은행의 특수성과 은행 구제의 정당성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학자들에게 노벨경제학상이 수여된 현실과는 딴 판인 얘기다. 그렇게 그는 '은행은 특별하다'는 주류 경제학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한다.

신 연구위원은 15일 "현대의 은행 제도는 과잉 부채, 저성장, 양극화, 사회분열, 기후 위기 등 현대 사회의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다"며 "바야흐로 과잉 금융의 시대, 부채에 의존하는 경제가 도래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1990년 한국장기신용은행에 입행하며 금융권에 발을 디뎠다. 그 시절 '공부 좀 한다'는 선수들을 모두 쓸어 담았던 장기신용은행, 지금은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산실이 된 곳에서 은행 산업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금융기관론(banking)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의 첫 선택이었다.

이후 새 둥지를 튼 신한은행에서는 10년 넘게 몸담으며 거시와 미시 경제를 두루 살폈다. 그렇게 은행원 생활을 마무리한 그는 2003년부터 자본시장연구원에 몸담으며 부원장까지 올랐다.

전직 은행원이었던 금융기관론 박사가 푸는 은행 제도의 이야기는 꽤 흥미롭다.

그는 "거의 모든 나라는 예외 없이 은행을 구제한다"며 "하지만 어떤 기업이 스스로 생존하지 못하고 제삼자의 지원을 통해서만 생존하는 것은 온전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과거의 은행은 집단적 신용팽창과 뱅크런을 겪은 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변화가 생긴 것은 19세기 중반 영국이 중앙은행을 통해 은행을 구제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후 주요 선진국이 영국의 선례를 따랐고, 20세기 들어 대부분의 나라는 중앙은행을 통해 은행을 구제했다. 예금보험제도, 정부의 지급보증에 이르기까지 은행에 대한 다양한 구제 장치는 꾸준히 늘었다. 그렇게 은행은 불사의 몸이 됐다.

신 연구위원은 "규제 완화의 쓰나미에 휩쓸려 안전망과 경쟁제한 규제의 단단한 결합은 맥없이 풀려버렸다"며 "신용팽창이 봉인 해제되면서 은행에 위기가 닥칠 게 뻔해졌다. 금융 억압의 종식은 곧 은행 위기의 시작"이라고 진단했다.

너도나도 한결같은 대출 확대 전략으로 몸집을 키우는 은행에 대한 비판도 날카롭다. 모든 은행이 대마불사를 좇을 수밖에 없는 배경 역시 은행만이 가진 특수성에서 왔다고 봤다.

그는 "안전망이란 특권은 지급불능 은행의 규모가 클수록, 그리고 지급 불능에 처한 은행의 수가 많을수록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주어진다"며 "최대한 덩치를 키우는 동시에 경쟁자와 최대한 유사한 전략을 취하는 게 은행이 가야 할 길이 됐다. 대마불사 은행이 자본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이제 은행을 구하려면 자본시장까지 구해야 할 판"이라고 비판했다.

은행을 향한 이러한 비판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경제에서 은행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게 된다.

그는 "은행이 곧 시장인 지금 은행과 시장 간의 상호보완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며 "은행이 무너지면 시장이 무너지고, 시장이 무너지면 은행이 무너지는 체제, 즉, 위기가 오면 금융 시스템 전체가 붕괴하는 체제가 돼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전망에 기댄 은행이 상환 능력이 없는 차입자에 대한 대출 청구권을 지속해서 누적하는 행위야말로 과잉 금융의 본질"이라며 "실물 경제와 동떨어진 금융 부문의 비대칭적 성장은 그저 과잉 금융일 뿐"이라고 꼬집는다.

책의 말미에, 그는 은행의 개혁이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금융이 먼저 바뀌지 않는 한, 금융 부문의 근본적 개혁을 통해 과잉 금융과 부채의존 경제를 종식하지 않는 한 ESG 달성은 공염불"이라며 "안전망 확대와 규제 추가 조합은 실패다. 응급처치의 반복보단 이제 위기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경제적 기회의 균등을 제공하던 금융이 이제는 걸림돌이 됐다"며 "은행과 금융이 실물 경제와 괴리된 채 과도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특권을 벗어던지고 중개 기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때 금융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개혁에 성공한 미래의 은행 제도가 시간의 검증을 이겨내길 바라고 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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