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빚은 선(善)인가, 악(惡)인가. 옛 어른들은 자식들에게 "야야, 빚내지 말고 저축하면서 아껴 살아야 한다"라고 거듭거듭 당부했다. 사실 빚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어른들의 말을 거역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생존을 위해서건, 자산 축적을 위해서건 빚은 중요한 매개체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빚 없이 사업하는 기업은 없다. 부채비율이 0%인 기업은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재무적으로 안정됐다는 칭송을 받기도 하지만, 성장에 뜻이 없는 소극적인 기업이란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분명 양면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좋고 나쁨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빚의 적정량을 두고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적절한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판단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거시는 물론 미시적인 경제 흐름과 자본시장의 고도화에 따라 측정치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금리 수준을 예측하고 결정하는 일은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방향이 위든, 아래든 금리라는 변수에 따른 이해관계로 얽히지 않은 사람과 기업은 없다.
오랜 고금리 시기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고통스러운 수준까지 올랐던 물가가 내리면서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컨센서스는 더욱 커진다. 최근 만난 정부 당국자들은 유력한 피벗 시점(우리나라 기준)을 10월 정도로 보는 것 같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그 결정을 하는 것이기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국내외 각종 분석자료와 데이터에 기반한 예측이라고 언급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그래도 그렇게 기대하는 것 같다.
금리가 내려가면 정부 입장에선 정책 집행에서 여러모로 수월하다. 재정 측면의 여력도 확보할 수 있다. 자원을 좀 더 효율적으로 배분할 기회도 갖게 된다. 물론 재정 총량을 급격히 줄일 수야 없겠지만, 경제주체들의 빚 부담 경감을 위해 활용했던 여력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숨통도 열리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마냥 기대만 할 일도 아니다. 금리 인하만으로 갑자기 모든 경제 현안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빚 부담이 조금 줄어들 뿐이지, 총부채 규모는 여전히 과도하기 때문에 언제든 잠재적 파산 가능성은 상존한다. 그래서 금리 인하 이후가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전문가들도 많다. 결국 정부의 사전적 경고와 이후 촘촘한 대책이 더 절실해진다.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5일 오전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건물 로비에서 취재진이 출근하는 김 후보자와 약식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4.7.5 superdoo82@yna.co.kr
최근 당국자들이 내놓는 각종 메시지를 보면 분명 이런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다행인 측면이 있다. 특히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지명 후 처음으로 내놓은 메시지를 주목한다. 당면한 과제로 제시한 것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소상공인·자영업자 부채, 과도한 가계부채, 제2금융권 건전성 등 4가지였다.
공통점은 모두 빚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제시한 일성은 "과도한 부채에 의존하는 것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 변경을 검토하겠다"였다. 그가 제시한 4가지 과제는 금리가 내리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 기대하는 측면이 많았던 것들이다. 그러나 해법 방향은 달랐다. 오히려 여력이 있을 때 빚의 총량 관리를 더욱 타이트하게 하고, 자금의 시장 배분을 더 효율적인 방향으로 틀겠다는 신호인 셈이다. 매우 적절했다고 본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들썩이는 부동산시장 과열 양상에 경고의 시그널을 보냈다. 금리 인하에 기대 슬금슬금 오르는 집값에 투기적 요소가 끼어들지 않도록 부채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메시지였다. 최 부총리가 집값 과열에 특단의 조치를 언급하고, 이 총재가 금융안정을 재강조한 것도 금리 인하에 과도한 기대를 갖지 말라는 경고다.
경제·금융·통화당국의 수장들의 이런 메시지는 앞으로도 좀 더 강화되고 반복될 필요가 있다. 빚으로 바벨탑을 쌓을 수 있다는 욕구를 제어해야 한다. 특히 부동산 시장의 뜨거운 욕망을 초장에 억누르지 못하면 또 한 번 고통의 시간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부동산 PF 연착륙 대책에 저항하고, 어떤 식으로든 집값을 다시 띄워 주머니를 채우려는 세력들을 좌시하면 안 된다. 그래서 금리 인하 이후가 더 중요하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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