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사만 난무…"공급 없는 수요·수요 없는 공급의 시장"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증권사와 보험사를 필두로 카드사, 자산운용사, 신탁사, 벤처캐피탈(VC) 등 비은행 금융회사 인수합병(M&A) 시장이 들썩이고 있지만 이렇다 할 '낭보'는 아직이다.
엎치락뒤치락 리딩금융 경쟁을 이어가는 은행 금융지주들은 내부 스터디만 몰두할 뿐 정중동의 시간을 보내고 있고, 사모펀드(PEF)들도 예년보다 어려워진 자금 조달에 일부 플레이어들만 물밑 접촉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 '트로피 딜' 찾는 우리금융…그래도 보수적인 금융지주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현재 시장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곳은 우리금융지주다.
최근 우리금융은 동양생명과 ABL생명의 대주주인 중국 다자보험그룹과 비구속적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인수를 위한 실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구속력 없는 약속이지만, 앞서 예비입찰에 참여하며 롯데손해보험에 관심을 보였던 우리금융이 방향을 튼 만큼 이번 협상이 성사되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달 자료요청서(RFI)를 보낸 우리금융은 현재 동양생명, ABL생명 경영진과의 미팅은 물론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순차적으로 진행 중이다. 시장에선 취임 후 '트로피 딜'이 필요한 임종룡 회장의 강력한 의지 아래 2조 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다자그룹과의 거래를 마무리 지으리란 시각이 우세하다.
우리금융은 지난 2월 우리자산운용의 잔여 지분 27%를 유안타증권으로부터 사들이기도 했다. 이로써 자산운용 업계 10위권인 우리운용은 우리금융의 완전자회사로 편입됐다.
비슷한 시기 사들인 한국포스증권은 우리종합금융과 합병해 우리투자증권으로 내달 출범한다. 증권업계 18위 수준인 우리투자증권의 외형 확장을 위해 2차 합병 가능성도 열어놨다.
이처럼 우리금융이 올해 적극적인 비은행 M&A에 나선 것은 은행 부문에 대한 자산 의존도는 90%, 이익 의존도는 99%에 달해서다. 임 회장인 취임 당시 그룹의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최우선 과제를 제시했지만, 산적한 과제가 많았던 탓에 임기 반환점을 돌기까지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잠재 매물에 대한 스터디는 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움직임은 제한적이다. 인수전에 뛰어들려는 PEF의 출자 요청에도 보수적이다.
시장 안팎에선 금융당국의 안정적인 자본 비율 유지에 대한 무언의 압력에 부담을 느끼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신탁사나 저축은행, 캐피탈사에 대한 자본확충 수요도 크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에 대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하반기부터 진행되면서 자회사에 긴급 수혈을 해야 하는 일도 잦아졌다.
실제로 KB금융과 신한금융은 최근 각각의 부동산신탁 자회사의 자본증권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했다. 우리금융은 저축은행 자회사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앞장서고 있는 금융지주들이 내놓아야 할 주주환원 정책도 자본 비율에 직접적인 요인을 주는 대표적 요소다.
한 금융지주 고위 임원은 "KB금융과 신한금융은 당분간 자사주 매입에 많은 재원을 투입해야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충분한 자본 버퍼가 필수적인 만큼 CET1 비율을 높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 그래야 소각에 대한 명분을 얻고, 당국의 설득도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보험 자회사 포트폴리오가 약한 하나금융지주는 예외다. 우리금융지주가 공격적인 M&A에 나서면서 가장 부담이 커진 곳은 하나금융이라는 게 금융권의 평가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금융의 생보사 인수가 완료된다면 이제는 하나금융의 시간"이라며 "하지만 외부 변수가 많은 하나금융 역시 최고경영자의 첫 임기보단 두 번째 임기에서 변화를 선택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 "삼성증권 같은 매물 없나"…공급 없는 수요, 수요 없는 공급의 시장
이러한 각각의 사정에도 IB 업계에선 은행 금융지주들인 비은행 M&A 시장에서도 정중동의 입장을 보이는 데 대해 '공급과 수요의 미스매치'라는 게 중론이다.
PF로 흔들리는 저축은행을 포함하면 현재 제2금융권 잠재 매물은 수십 개에 이르지만 금융지주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게임체인저'가 없어서다.
그간 롯데손보 정도가 게임체인저로 손꼽혔지만, 원매자들과의 가격 견해차가 컸다. 현재 롯데손보는 상시 매각 체제로 전환한 상태다.
한 IB 업계 임원은 "삼성증권이 매물로 나오면 달려들지 않을 금융지주가 있겠나. 자회사를 통해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면 목적은 외형 확장인데, 중소형사는 무의미하다. 인수 후 합병(PMI)도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IB 업계 관계자는 "게임체인저는 자신의 몸값이 얼마나 높아질 수 있을지 안다. 그러니 가격 눈높이는 클 수밖에 없다"며 "현재의 비은행 M&A 시장은 중소형사만 난무하는 공급 없는 수요, 수요 없는 공급인 셈"이라고 진단했다.
PEF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눈에 띄는 곳은 '강성부 펀드'로 익숙한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정도다. 옛 메리츠자산운용(現 KCGI자산운용)을 인수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한양증권 지분 매각의 원매자로도 거론되고 있다.
출자 여력에 걱정 없는 대형 PEF들은 금융권보단 의료, 뷰티, 바이오, 화학, 2차전지 등 이종 산업군의 M&A에 관심이 크다. 상반기 주춤했던 M&A 시장이 하반기엔 이들 중심으로 돌아가리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관심 업종에 금융은 없다.
전통적으로 비은행 금융회사에 관심이 있었던 중소형 PEF들은 재무적투자자(FI)를 확보하기가 녹록지 않다. 컨소시엄에 이렇다 할 전략적투자자(SI)를 우선시하는 금융당국의 눈치 보기도 한창이다.
한 사모펀드 대표는 "금융지주가 곳간을 닫으면서 SI는 물론 FI 확보도 어려워졌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 다른 M&A보다 허들이 높은 금융 M&A는 다른 딜보다 훨씬 어렵다"며 "당분간 빅딜을 볼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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