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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헌의 기업단상] 지배주주만을 위한 밸류업

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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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두산그룹이 최근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은 매우 충격적이다. 정부가 한국증시의 고질병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없애보겠다고 기업 밸류업 정책에 열을 올리는 데, 여기에 정면으로 맞서는 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소액주주의 이익은 무시하고 철저하게 지배주주만을 위한 행태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 제도 강화를 통한 규제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두산그룹이 공시한 지배구조 개편 내용의 골자는 이렇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편입하는 내용이다. 두산밥캣은 상장 폐지된다. 이 과정에서 두산밥캣의 기존 주주들은 보유 주식 1주당 두산로보틱스 신주 0.63주를 받는다. 알짜회사이자 두산그룹의 캐시카우인 두산밥캣 주주들의 불만이 폭발하는 대목이다.

두산밥캣, 미국 패스트컴퍼니 '가장 혁신적인 기업' 제조업 부문 선정

[연합뉴스 자료사진]

두산밥캣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약 10조3천억원으로 두산로보틱스(530억원)의 200배에 달한다. 두산밥캣은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는데, 두산로보틱스는 10년 가까이 적자기업이다. 로보틱스의 성장성을 많이 쳐준다 해도 주주 입장에선 극단적으로 불합리한 결정이다. 알짜 자회사를 내줘야 하는 두산에너빌리티 역시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두산밥캣과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이익에 반하는 이런 결정은 모두 합법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상장기업 간 합병시 주식의 시가로 합병 비율을 산정한다. 기업 가치와 관계 없이 주가가 높은 기업이 낮은 기업을 싸게 가져갈 수 있는 구조다. 두산밥캣 주주가 두산로보틱스 주식을 1주당 0.63주밖에 못 받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자본시장법의 맹점을 악용한 사례다.

현행 법대로 합병 비율을 시가로만 정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주가는 기본적으로 기업 가치를 반영하지만, 수급과 테마 등에 오랜 기간 왜곡되거나 변질되기도 한다. 특정 세력이 의도를 가지고 주가를 누르거나 띄울 수도 있다. 시가가 항상 합리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배주주가 시기 선택을 통해 불공정한 합병 비율을 만들어낼 수도 있단 얘기다.

법 위반이 아니라고 해서 정당성을 갖는 건 아니다. 이번 구조 개편으로 일반 주주들은 피해를 보지만, 오너 일가를 비롯한 지배주주는 알짜 두산밥캣의 지배력을 높이는 효과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번 개편으로 두산그룹의 지주회사 ㈜두산의 두산밥캣 지분율은 기존 13.8%에서 42%로 크게 높아진다. ㈜두산의 지분을 많이 보유한 오너일가의 두산밥캣 지배력도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구조다. 박정원 두산 회장은 ㈜두산의 지분 7.64%, 친인척 지분까지 합치면 총 36.91%를 보유하고 있다.

개회사 하는 정은보 이사장

(서울=연합뉴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24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상장기업 사내·사외이사 대상 '기업 밸류업' 설명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2024.6.24 [한국거래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두산그룹은 사업 성격에 맞게 계열사 위치를 조정하는 것이 시너지를 더 낼 수 있는 방안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장기적으로는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번 개편도 기업 밸류업의 일환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기대와 추측의 영역이지 팩트로 보긴 어렵다. 일반주주 입장에서 보면 '그들만의' 밸류업일 뿐이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시장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거래가 우리 시장에선 너무 쉽게 이뤄진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거버넌스 전문가들은 두산그룹 등 일부 오너기업이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찬물을 끼얹고, 법과 제도는 이를 방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새로운 기법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등의 법 규제가 없으면 진정한 밸류업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그들의 꼼수와 편법 행위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지배주주만을 위한 밸류업에 그치게 될 것은 자명하다. 정치권의 움직임이 빨라지는 것은 그나마 위안거리다. 국회에서 두산밥캣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자본시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최근 발의됐다고 한다. 정부의 상법 개정 의지는 다소 약해진 분위기지만, 이 역시도 국회에서 집중적인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취재보도본부 기업금융부장)

chhan@yna.co.kr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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