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두산 법규 지켰으나…계열사 합병 공정성 논란
합병가액 규제 자율화 공감대…"주주 보호 강화 전제돼야"
(서울=연합인포맥스) 김학성 기자 = 최근 국내 주요 그룹들이 연이어 계열사 간 합병을 발표한 가운데 합병가액 산정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재계는 법규를 지켰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일반주주들은 대주주의 지배력이 부당하게 강화됐다며 반발한다.
전문가들은 합병 제도 개선과 주주에 대한 법적 보호 강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출처: 두산밥캣]
◇ 법대로 하면 공정한가
25일 재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발표된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합병에서 합병비율의 공정성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자산가치(주당 24만5천405원)의 절반에 못 미치는 기준시가(주당 11만2천396원)를 합병가액으로 정한 것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경제개혁연대는 전날 논평을 통해 "이번 합병에서 SK이노베이션의 회사 가치는 10조8천억원으로 평가됐지만,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보면 23조5천억원"이라면서 "더욱이 SK이노베이션 주가는 최근 3년간 최저 수준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보다 앞서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인적분할로 떼어 내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한다고 밝혔다.
시장 참여자들은 지배주주 지분율이 높은 두산로보틱스를 상대적으로 고평가하고 그렇지 않은 두산밥캣은 저평가한 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재편 계획에 대해 "자본시장법의 상장회사 합병비율 조항을 최대로 악용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주목할 사실은 두 경우 모두 법을 어긴 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합병의 요건과 방법을 규정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76조의5는 상장사 간 합병의 경우 기준시가에 근거해 합병가액을 정하도록 한다.
또 상장사와 비상장사가 합병할 때 상장사는 기준시가를 따르되 기준시가가 자산가치에 미달하면 자산가치를 활용할 수 있게 하고, 비상장사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가중산술평균한 본질가치를 합병가액으로 사용하도록 한다.
이에 비추어 보면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과 두산로보틱스가 기준시가로 합병가액을 정하고, 비상장사인 두산에너빌리티 분할신설부문(두산밥캣)이 본질가치에 기반해 합병가액을 구한 것은 합법이다.
경제개혁연대는 SK이노베이션에 대해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은 합병비율 산정이기는 하지만,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한 최고의 선택이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지배주주는 (일반주주를 위해) '할 수 있다'라고 규정돼 있으면 안 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주주 보호 강화 전제로 합병 규제 자율화해야"
일각에서는 상장사의 합병가액을 시가로 정하도록 강제한 제도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황현영·정수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1962년 증권거래법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상장사의 합병과 관련해 특별한 규제가 없었다. 이후 1997년 법률이 개정되며 합병가액 산정에 대한 명시적 규제가 도입됐다.
이러한 규제의 취지는 지배주주가 계열사 간 합병에서 임의로 유리한 합병비율을 적용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일반주주 보호가 목적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시가 기반 합병을 강제하는 경우에도 주주환원 규모를 조절해 주가를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거나 합병 시점을 자의적으로 선택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지배주주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그나마 투자자 보호를 위해 마련한 규정이 오히려 면죄부가 됐다"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합병가액 산정방식 자율화를 제안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같은 보고서에서 "합병하는 회사의 이사회가 최선을 다해 협상해 합병비율을 산정하고, 그 적정성에 대한 이사회의 의견 등 주요 정보를 시장에 투명하게 공시하도록 해야 한다"며 "간접적인 규제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자본시장이 발달한 선진국은 한국과 달리 합병가액과 합병비율을 산정할 때 회사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한다.
최근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장사가 합병가액을 정할 때 주가를 기준으로 자산가치와 수익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아울러 합병 관련 제도 개선에 더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 등 주주권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 교수는 "합병가액 규제만 풀면 더 위험할 수 있다"며 "일반 주주에 대한 법적 보호가 강화되는 것을 전제로 합병 계약을 자율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hskim@yna.co.kr
김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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