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 2005년, 한화그룹이 실행한 프로젝트의 결론은 자산운용 육성이었다. 금융계열사의 청사진을 그린다며 시작된 프로젝트에는 너무 큰 덩치의 생명보험사를 품어버린 현실과, 역사는 오래됐으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증권과 손해보험에 대한 난감함이 담겼다.
방향성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이듬해, 당시 한화생명의 부사장이었던 금춘수 고문이 그룹의 초대 경영기획실장에 오르면서부터였다. 김승연 회장의 '복심'이자 오랜 시간 그룹 '2인자'로 불렸던 그는 한화의 사업과 지배구조 개편, 경영승계 구도, 미래 전략을 진두지휘했다. 올해 5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당시 대한생명 인수 이후 주춤했던 한화가 금융 영토를 공격적으로 넓히는 밑그림을 그렸다.
제일화재 인수가 그 시발점이었다. 1990년대 초, 범한화가의 계열분리 과정에서 김승연 회장의 누나인 김영혜 씨가 물려받은 제일화재는 IMF 이후 한보사태로 시장에 나온 한보상호신용금고 자산을 인수하며 새누리상호신용금고를 출범, 온라인 보험시장에도 뛰어들며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하지만 2007년 메리츠화재의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로 김 회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시 금 고문에게 '제2의 창업'을 지시하며 대우조선 인수를 추진했던 김 회장은 제일화재의 백기사도 자처했다. 그렇게 제일화재는 한화의 품에 다시 안기며 지금의 한화손해보험이 됐다. 새누리상호신용금고 역시 한화저축은행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고 2년 뒤, 한화는 푸르덴셜투자증권과 푸르덴셜자산운용도 인수했다. KB금융그룹과 맥쿼리 등 내로라하는 국내외 원매자들과의 접전 끝에 얻어낸 값진 결과였다. 여의도에선 아직도 이 거래를 새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이뤄진 최초의 금융회사 간 M&A로 기억한다. 당시 시장에선 금융권의 대형화, 국제화가 M&A로 촉발되리란 장밋빛 전망도 쏟아졌다. 과거 '삼 투신'의 명맥을 잇던 푸르덴셜의 자산관리 전문성을 살려 5위권 증권사로 도약하겠다던 한화투자증권의 포부도 당찼다.
기대와 달리 제일화재도 푸르덴셜도 녹록지 않았다. 손해보험 업황이 악화하며 즉각적인 시장 방어에 더뎠던 한화손보는 2018년 대규모 감익에 이어 이듬해엔 적자를 기록했다. 일찌감치 손보업에 부정적이었던 그룹은 매각도 검토했다. 푸르덴셜 역시 인수합병의 과실을 따 먹기도 전인 2016년 대규모 주가연계증권(ELS) 손실로 적자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위기는 반복됐다.
한화생명도 쉽지 않았다. 외환위기 직후 신동아그룹이 공중분해 되자 한화그룹은 부실 금융기관이었던 대한생명을 2002년 인수했다. 그 당시 장부가 '0', 아니 마이너스에 가까웠던 신동아화재는 '덤'으로 따라왔다. 은행에 대한 금산분리가 명확한 우리나라에서 보험은 오너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확실한 수단이자 기회였다.
하지만 대한생명 시절 공격적으로 판 '오리지널' 종신보험은 독이 됐고, 손익을 메우기 위한 채권 매매는 잦아졌다. 상장사가 된 2010년 이후 금리가 본격적으로 오르자 상황은 꼬였다. 꾸역꾸역 버텼지만, IFRS17과 킥스(K-ICS) 도입을 준비하며 미래의 자본 적정성을 향한 두려움은 더 커졌다. 그룹의 캐시카우를 꿈꾸며 인수했지만, 자칫 밑 빠진 독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한화생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선 다른 도전이 필요했다. 그렇게 한화생명을 향한 그룹의 고민은 영토 확장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IFRS17은 우려와 달리 득이 됐다. 제도적 공백과 해석의 여지가 주는 숫자적 여유 안에서 공격적으로 '살길'을 찾았다. 일찌감치 제판분리(제조와 판매 분리)에 나선 한화생명은 GA(법인보험대리점)를 사들이며 월납 초회 보험료로 삼성생명을 앞질렀다. 최근 인도네시아 노부은행 지분을 사들이며 국내 보험사 중 최초로 해외 은행업에 진출한 것도 인상적인 딜이었다.
그 사이 한화손보도 분기 1천억원을 벌 수 있는 체력을 확보했다. 한화투자증권은 이제 시장에서 가상자산 관련주로 묶일 정도로 새로운 도전에 열심이다. 그 옛날 프로젝트의 결론처럼 최근 한화 그룹은 부쩍 자산운용 시장에 힘주고 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보험 그룹의 중심축이 자산운용에 있음을 고려하면 당연한 선택이다. 한화자산운용은 최근 금융계열사 공동 브랜드 'LIFEPLUS(라이프플러스)'에서 따온 '플러스'로 상장지수펀드(ETF) 브랜드를 새로 단장하며 공격 태세를 갖췄다. LPGA 투어 개최는 물론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구단까지 후원하는 한화는 라이프플러스를 해외 시장에 알리는 데 한창이다.
그래서 한화 그룹의 금융은 독특하다. 다른 오너 금융그룹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데 적극적이다. 혹자는 그 배경을 김승연 회장에게서 찾는다. 지난 1일 취임 43주년을 맞이한 김 회장은 현존하는 최장수 '회장님'이다. 29세에 회장이 된 그는 우리나라 경제 1세대 창업자들이 2세대로 넘어가는 그 중간 어디쯤부터 그룹을 이끌었다. 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은) 낀 세대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 시절이 달랐듯 세대교체가 없었던 김 회장은 위아래의 장점을 모두 흡수하기 바빴다. M&A 같은 공격적인 베팅이 그룹의 성장사가 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남다른 '부정'을 자랑하는 김 회장은 올해 유달리 '삼남'의 경영현장을 자주 찾았다.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최고글로벌책임자(CGOㆍ사장)는 올해로 입사 10주년을 맞았다. 진짜 세대교체는 시작됐다. (투자금융부 정지서 기자)
(서울=연합뉴스) 한화금융계열사 임직원들이 지난 25일 서울 영등포구 한화생명 본사를 방문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환송하고 있다. 2024.4.26 [한화그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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