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서영태 기자 = "두산밥캣 주주에게는 완전히 말이 안 되는 행위를 한 셈이다. 사실상 배임에 가깝다."
지난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 이후 행사에 참석했던 한 운용사 CEO가 한 말이다.
같은 자리에 있었던 또다른 운용사 CEO는 "두산 사태 같은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고, 다들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전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23곳 운용사의 CEO가 참여했다.
이른바 '두산 사태'는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둘러싼 자본시장 내 논란을 말한다. 두산그룹은 알짜 기업인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어내고 적자 기업인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건설장비 업체인 두산밥캣과 로봇 회사인 두산로보틱스가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주식 교환 비율이다. 시가총액으로 교환 비율을 계산한다는 법에 따라 두산밥캣 주주는 1주당 두산로보틱스 주식 0.63주를 받는다. 지난해 기준으로 두산로보틱스보다 190배 가량의 매출을 낸 두산밥캣의 주식이 더 저평가된 셈이다.
두산밥캣 주주 입장에선 불리한 교환 비율을 받아들이거나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에 두산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한 지난달 11일 이후 한 달 동안 두산밥캣 주가는 25%가량 추락,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혔다.
시장에선 두산그룹의 개편안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추진 중인 자본시장 밸류업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합법적인 방식으로 계산된 주식 교환 비율이라는 두산그룹의 반박에도 '법 기술자'를 동원해 꼼수를 썼다고 운용사 CEO는 비판한다.
한국이 일본처럼 밸류업에 성공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외국인 투자자도 떠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 증권소송 전문로펌 관계자는 외국인 투자자가 두산 사태를 계기로 '기업가치 밸류업'에 회의를 느끼고 한국 주식을 정리 중이라고 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서울 지부를 이끄는 크리스찬 데이비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끝내려던 서울(정부)의 노력이 난관에 부닥쳤다"고 썼다.
금융감독원도 이러한 분위기를 의식한 듯 지난 간담회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내용으로 한 발제를 운용사 CEO에게 요청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일반주주 이익 침해로 비판받는 밥캣-로보틱스 합병을 겨냥해 "정정신고서에 부족함이 있다면 횟수 제한 없이 정정 요구를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의 까다로운 절차가 '제2의 두산'을 예방하기엔 역부족이다. 범정부적인 '기업가치 밸류업' 노력조차 허탈하게 무너진 게 한국 자본시장의 현실이다. 일반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이사회의 의사결정을 막을 '상법 개정안'이 하루라도 빨리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는 이유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규정한 상법 제382조의 3을 수정하는 개정안은 야당을 중심으로 여럿 나온 상황이다. 지난 5일에는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의원이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주주를 공정하게 대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는 내용을 추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날 오전에는 '개미투자자보호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정쟁 속에서 1천400만 투자자를 위한 법안을 처리하지 못했던 정치권이 22대 국회에서는 성과를 거둬야만 한다.
한 운용사 CEO는 "해외에서는 회사의 이사가 전체 주주의 이익에 복무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사례가 너무나 많았다"라며 "이러한 부분을 법으로 바꿔주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거라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ytseo@yna.co.kr
서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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