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말이 있다. 맹자 양혜왕편에 나오는 고사성어다. 고사의 일부를 인용해보자. 맹자가 패도정치를 추구하던 제나라의 선왕을 찾아가 영토를 확장하고 오랑캐를 다스리고 싶으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그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연목구어)과 같다고 지적했다.
선왕이 맹자에게 자신의 바람이 그렇게 심한 것이냐고 되묻자 맹자는 훨씬 나쁘다면서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은 물고기를 손에 넣지 못해도 재앙은 없지만 패도정치를 추구하는 것은 재앙이 뒤따른다고 꼬집었다. 이어 작은 것으로 큰 것에 맞서면 어떠하며 적은 것으로 다수에 대항하는 것은 어떠하며 약한 것으로 강한 것에 맞서는 것이 어떠하냐고 반문했다. 모두가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틀 전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의 효력이 다했다고 주장하면서, 기업형 장기임대주택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임대료 규제를 풀고 세제 혜택을 제공해 기업을 임대인으로 끌어들여 개인 간 거래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방지하고 새로운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게 하는 등 시장을 바꿔보겠다는 취지다.
(서울=연합뉴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28일 서울 용산구 베르디움 프렌즈에서 열린 새로운 임대주택 공급 추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8.28 [국토교통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전세가 왜 효용을 다하게 됐는가.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가 균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택을 매개로 한 임대차 계약이 아니라 이제는 전세보증금을 매개로 한 금전소비대차 계약으로 전세를 바라보자.
돈을 빌려 가는 이가 갚을 능력은 있는지 따지지도, 따질 수도 없는 것이 전세 계약이다. 또 돈을 빌려 가는 이가 상환일을 어기더라도 이에 따른 벌이 없고, 돈을 돌려받기 위한 절차 또한 담보물을 경매 처분해야 하는 등 까다롭기 짝이 없다.
그래서 지난 2022년부터 국책연구원인 국토연구원도 전세제도를 보완하거나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연구보고서를 내놓으며 줄기차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국토부에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임대인이 돌려주지 않은 전세보증금을 대신 갚느라 전세 반환보증을 제공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지난해 4조원이 넘는 손해를 봤고 올해 상반기에도 벌써 3조원의 전세보증금을 대신 갚았다. 피해자 지원은 사기라는 범죄의 고의성이 확인되는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차기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임대인을 만난 임차인은 속만 썩이고 있을 뿐이다.
기업형 장기임대주택을 활성화하겠다는 박상우 국토부 장관의 발상이 연목구어로 비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세 사기 혹은 전세보증금 반환을 둘러싼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이 본질적으로는 양자 간의 정보 비대칭성 혹은 처벌의 불균형에서 비롯됐다고 본다면 개인보다 더 강력한 기업을 임대인으로 교체하는 게 사태의 해결은커녕 악화를 부를 수도 있다.
기업형 임대사업자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으로 123개 사업장 5만2천533세대의 주택이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으로 이름을 바꾼 기업형 임대로 운영되거나 운영될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에 지원된 주택도시기금만 9조8천384억원이다. 기업형 임대가 없어서 전세 사기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박근혜 정부 시절 기자는 서승환 당시 국토부 장관에게 기업형 민간임대 활성화를 통해 임대차 시장을 안정화하는 방안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시 서 장관은 기자에게 그렇게 되려면 주택가격이 좀 더 하향안정화돼야 한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업형 임대가 활성화되려면 당시 기준으로 최소 5~6% 수준의 임대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주택가격이 높다 보니 국민들이 지급할 수 있는 임대료와 기업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임대료의 간극이 크다는 의미였다. 서울 시내 아파트 평균 가격이 10억원이라고 했을 때 연 5%의 임대료를 책정한다고 하면 연간 5천만원의 월세를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
시장 참가자가 다양하게 구성된다는 것은 원론적인 의미에서 건강한 시장구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시장 참가자 사이의 관계가 일방적이고 왜곡된 상황에서 이를 바로 잡지 않고 시장 참가자를 교체해서 변화를 꾀하겠다는 것은 올바른 해법이 되기 어렵다. 오히려 현재 소득 대비 과도하게 높은 집값을 정당화하고 국민의 주거비 부담을 가중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한때 기업형 임대 활성화에 관심을 가졌던 기자가 박상우 장관이 추진하는 기업형 장기임대 활성화에 의구심을 가지는 이유다. (기업금융부 남승표 기자)
spnam@yna.co.kr
남승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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