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2024.8.22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서울=연합인포맥스)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한 총력전이 벌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의 강력한 경고에 시중은행들이 과감한 '대출 총량' 축소로 화답하고 있다. 속도도 매우 빠를뿐더러 강도는 더더욱 거칠어진다. 지난 7~8월 가계부채가 급증한 데 대한 당국 '책임론'이 가세하자 당국의 스탠스는 오히려 더 강해졌다. 그저 앞만 보고 가고 있다. 실수요까지 모두 죽이는 끝판왕 관치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그래프를 아래쪽으로 향하게 만들겠다는 목표는 분명하다.
집값이 들썩이자 정부는 지난달 8일 대규모 부동산 공급정책을 내놨다. 그런데 정부 자료에는 공급 확대 대책만 잔뜩 나열돼 있었을 뿐 금융 관련 대책은 없었다. 딱 한 줄 걸친 게 전부였다. '가계대출 증가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추가적인 거시건전성 규제 강화 방안을 조만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으레 동반되는 수식어 정도로 보였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은행들의 연쇄적인 대출 축소 릴레이의 서막이었다.
8·8 공급대책이 마련되는 와중에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는 물밑에서 강력한 가계부채 억제 대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8월 20일의 '수도권 핀셋 DSR 강화 대책'이다. 대출을 틀어막지 않으면 널뛰는 서울 집값을 잡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서 나온 대책이다. 집값이 뛰면 대출 수요를 더 자극하는 연쇄 효과도 잡아야 한다고 봤다.
정부는 9월 1일부터 시행되는 스트레스 DSR 2단계에 적용할 스트레스 금리를 당초 0.75%포인트(p)에서 1.2%p로 대폭 올렸다. 타깃은 수도권이었다. 스트레스 금리를 올리면 그만큼 대출 한도는 대폭 줄어든다. 현 정부 들어 가장 강력한 대출 억제 대책이었다. 대통령실 등은 급격한 충격파를 고려해 1.0%p 정도로 하자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1.2%p로 강하게 밀어붙였다. 기왕에 할 것이라면 더 세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며칠 뒤 금융감독원도 가세했다. 시중은행들이 올해 계획했던 가계대출 성장 목표치를 대폭 넘어서자 기존 목표 수준으로 맞추지 않으면 내년부터 대출 자체를 못 하게 제한하겠다는 엄포였다. 은행들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꼴이다. 어떻게 해서든 연말까지 가계대출을 더 내줘선 안 되는 상황이 된 셈이다.
주택을 소유하면 추가로 대출을 내주지 않겠다는 은행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심지어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을 넘어서 마이너스통장 한도까지 줄이고 있다. 개인을 상대로 한 거의 모든 대출을 조이고 있다. 당분간 이러한 기조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제로'다. 당국이 뒤늦게 숙제하다 보니 대책의 강도는 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효과는 분명히 이전과는 다를 것 같다.
가계부채는 늘 우리 경제에 큰 리스크였다. 특히 부동산 시장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보니 단순히 금융의 관점에서만 볼 수 없다. 그래서 거시경제 운용상 결코 쉽지 않은 이슈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거칠게 대출 축소를 밀어붙이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거시경제 리스크를 촘촘하게 관리하겠다는 차원뿐만은 아니다. 한국은행에 대한 화답인 동시에 일종의 분노의 대응처럼 보인다.
지난달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동결하자 대통령실에선 "아쉽다"라는 공식 입장이 나왔다. 한은의 독립성을 침해했느니, 정부가 한은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솔직히 대통령실과 정부의 입장이 이해되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
사실 현 정부 들어 경제 분야에서 하루도 조용한 날은 없었다. 2022년 3월 4%를 돌파한 물가는 같은 해 7월에 6.3%라는 경이적인 숫자를 찍었다. 당연히 정부의 모든 정책 방향은 물가 잡기로 귀결됐다. 전방위 물가 전쟁 속에 5%대였던 물가는 작년 2월이 되어서야 다시 4%대로 내려왔다. 올해 초에는 3%대로, 최근에는 2%대로 주저앉았다. 정부 입장에선 "이만큼까지 했는데"라고 할 말이 있었던 셈이다.
꼬라박던 수출도 다시 우상향 기조로 만들었고, 레고랜드 사태 이후 불안불안하던 금융시장도 안정시켰다는 데 정부는 큰 자부심을 갖는다. 세수 부족 상황 속에서도 없는 돈을 쥐어짜 내 대규모 내수 살리기 대책도 추진했다. 그런데 생각만큼 내수가 살아나지 않았다. 정부는 소비 위축의 가장 큰 이유가 과도한 금융비용 때문이라고 본다. 금리만 내려준다면 숨통이 트일 수 있을 텐데 한은의 '박절함'에 서운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은이 또 가계부채 문제를 금리 인하를 위한 조건처럼 내걸었다. 그동안 한은이 내준 숙제를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숙제를 내주자 솔직히 좀 거칠게 나온 것이다. 물론 가계부채 문제가 통화정책에 중요한 요인이긴 하다. 정부도 분명 동의한다. 하지만 한은의 입장이 조금 과도하다고 보는 것 같다. 정부는 9~10월 가계대출 증가 추이를 분명하게 꺾어놓겠다는 의지다. 한은이 또 내준 숙제의 결과를 반드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만큼 했으니 당신도 패를 내놓으시오". 정부가 한은에 던지는 메시지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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