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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의 어프로치] 우리은행과 제일은행의 엇갈린 운명

2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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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1990년대까지 대한민국 금융시장은 이른바 '조상제한서'가 주름 잡았다.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의 첫 글자를 딴 5대 은행이 금융계를 지배했다. 이들 은행은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들의 자금을 쥐락펴락하면서 승승장구했다.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으로 버팀목 역할을 해오던 조상제한서는 1997년 불어닥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동반 부실화하면서 모두 간판을 내리게 된다. 정부는 연쇄도산을 막겠다는 의지로 구조조정 고삐를 죄었다. 살아남으려면 팔리거나 합치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다.

제일은행은 그중에서도 잘나갔다. 한일·상업은행과 함께 '제일은행이 제일주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직원들의 자긍심은 대단했다. 하지만 한보, 뉴코아, 기아, 대우 등 주요 거래기업의 연쇄도산으로 한순간에 부실 은행이 됐다. 1997년 말 제일은행은 '뱅크런(대량 예금인출)'으로 파산 위기에 몰렸고 이름 그대로 '제일' 먼저 망하기 직전까지 갔다. 17조7천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정부가 주인이 됐다.

정부는 IMF와의 합의에 따라 제일은행을 팔기로 했다. 이듬해 제일은행은 미국계 사모펀드 뉴브릿지캐피탈에 팔렸다. 당시 윌프레드 호리에 행장은 전형적인 미국 뱅커로 '튀는 경영'을 했다. 정부 돈이 들어간 은행이었지만 관치금융에 맞서 부실지원 압력 등에 당당히 '노(NO)'를 외쳤다. 2000년 말 정부가 부실회사의 채권을 은행이 인수해 처리하는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도입할 당시 다른 은행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정부 방침을 따랐지만, 제일은행은 거부해 금융당국을 당혹게 했다.

이후 2005년 제일은행은 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 재인수된다. 스탠다드차타드는 뉴브릿지캐피탈 지분 51%에 정부와 예금보험공사가 소유했던 나머지 49%까지 매입해 제일은행은 완전자회사로 편입한다. 하루아침에 회사가 '외국계'가 됐다. 다시 흑자 은행으로 되살리기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과 같은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수년간 이어졌다. 박종복 행장이 빌 윈터스 SC그룹 회장을 직접 만나 '고임금 직원의 퇴직이 필요하니 나를 믿고 5천억원을 지원해 달라'고 담판 지은 일화는 유명하다.

'제일'이라는 이름을 되찾은 것도 박 행장이다. 스탠다드차타드 인수 후 2012년 SC은행으로 사명을 변경했으나 그는 '제일' 브랜드를 살려야만 국내에서 성장할 수 있다고 끈질기게 영국 본사를 설득했다. 옷 벗을 각오로 '지킬 건 지켜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 행장은 SC제일은행의 첫 한국인이자 현직 최장수 은행장으로 올해 말 떠난다. '제일'이라는 브랜드와 SC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며 SC그룹의 한국시장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끌어냈다는 성과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혹자들은 어찌 보면 국내 은행권에서 정권과 정부에 상처받지 않고 명예롭게 떠나는 몇 안 되는 은행장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제일은행과 한 축을 이뤘던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현 우리금융지주·우리은행의 전신이다. 한일·상업은행도 IMF 시절 부실은행 구조조정으로 합병됐다. 공적자금 3조원과 12만명의 국민이 주식공모에 참여해 한빛은행으로 재탄생했고 2001년 4월 예금보험공사가 설립한 우리금융지주에 편입되며 우리은행으로 간판을 바꿨다.

우리은행의 대주주는 예보였다. 외부 입김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실제로 박병원 전 회장, 황영기 전 회장, 이팔성 전 회장까지 정부·정치권과 연이 깊은 인사들이 지주 회장직에 올랐다.

사실상 주인없는 기업에서 100년의 역사를 가졌던 한일·상업은행의 대등합병은 화학적 결합도 이뤄지기 어려웠다. 툭하면 계파 갈등이 일어났고, 사내 정치가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정부에 줄을 대고, 자리를 보전하는 데 민감했다. 그렇다 보니 은행장도 상업·한일은행 출신들이 교차로 맡았다. 지난 2011년부터는 이종휘(한일), 이순우(상업), 이광구(상업), 손태승(한일), 권광석(상업), 이원덕(한일), 조병규(상업) 등 거의 징검다리식이다.

우리은행 채용비리 사태도 알고 보면 계파 갈등이 발단이었다. 이순우-이광구 상업은행 출신이 연이어 행장에 오르면서 내부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금융당국과 국회의원실을 향한 투서에서 촉발됐고 결국 이광구 행장이 물러났다. 이런 계파구도는 외부 연줄과 내부의 맹목적 충성을 요구했고, 20년 넘게 하나의 조직문화로 자리 잡았다. 내가 살아야 같은 출신의 후배도 살릴 수 있고, OB들도 챙길 수 있어서다.

이번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의혹도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금융감독원 검사도 제보로 출발했다. 지금 자리에 있는 인물이 마땅찮다는 의미다. 벌써 우리은행 안팎에선 다음 행장은 한일 출신이 돼야 한다, 또 지주 회장은 상업 출신이 뛰고 있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은행은 과점주주 체제로 민영화가 이뤄지고도 과거 조직문화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분명 조직문화를 바꿀 기회는 있었을 터이다. 제일은행처럼. 두 은행의 엇갈린 운명은 신념 없는 사람의 문제일까. 그렇게 사람들을 만든 정부가 원인일까. 그렇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정책금융부 이현정 기자)

박종복 SC제일은행장(맨 왼쪽) 지난 2016년 종로구 본점에서 영업부 간판을 '한국SC은행'에서 'SC제일은행'으로 바꾸는 제막식을 열고 있다.

hjlee@yna.co.kr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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