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파죽지세의 기세를 보이고 있다. 격전지에서도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트럼프가 유세 도중 피격됐을 때만 해도 대선은 거의 끝난 게임처럼 보였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해리스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우선 몇 개를 꼽자면 조 바이든 대통령이 극적인 타이밍에 사퇴한 점을 들 수 있다.
트럼프와의 TV토론 이후 불거진 고령 논란에도 완주하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던 바이든이 지난 7월 21일 전격 사퇴를 발표했다. 패색이 짙었던 민주당과 지지층은 환호했고 역대급 정치자금이 몰렸다. 상승세는 쭉 이어져 최근에는 일부 경합주에서도 해리스가 트럼프를 앞선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전통적 지지층과 중도층을 동시에 공략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바이든을 지지하기 주저했던 젊은 층을 흡수했고, 자메이카인 아버지와 인도인 어머니를 둔 다양성을 배경으로 흑인층의 지지도 받고 있다.
조금 색다른 시각도 있다. 바로 해리스의 '희미했던 존재감'이 되레 강점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을 역임했던 해리스는 2017년 캘리포니아주 연방 상원의원에 선출되며 정계에 발을 내디뎠다. 2019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해리스는 경선에서 도중하차했으나 이후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돼 부통령 후보에 낙점됐다. 이후 바이든이 대선에 승리하며 2021년 백악관에 입성했다. 하지만 부통령으로 지내는 동안 존재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이번에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것을 두고 '벼락스타가 탄생했다'는 말이 나온 이유다.
희미했던 존재감 덕에 인플레이션 관리 실패와 같은 바이든 정권의 중대한 실책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리스는 연상조차 되지 않았다는 슬픈 얘기일 수 있지만, 이번 대선 레이스 과정에서는 오히려 강점에 됐다.
눈을 돌려 일본을 보면 공교롭게도 비슷한 현상이 보인다. 지난 8월 중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 여파로 내각 지지율이 10~20%대로 추락하자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여러 인사들이 차기 총재 자리를 노리고 있는 가운데 가장 이목을 끄는 것은 고이즈미 신지로(43세) 전 환경상의 부상이다. 고이즈미 신지로는 2001~2006년 집권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자 자민당 중의원이다. 지난 2009년에 28세의 젊은 나이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된 이후 정계에 진출했다.
독특한 말투로 국내에서는 '펀쿨섹좌'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환경상 때인 2019년 "기후변화 같은 커다란 문제는 즐겁고 멋지게, 섹시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다소 엉뚱하게 답해 논란이 생긴 후 붙여진 별명이다.
같은 말을 반복해 '내용이 없고 의미가 불분명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준수한 외모와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언젠가는 총리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꾸준하게 나왔다. 자민당 총재 선거 때마다 후보로 거론되긴 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아사히 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고이즈미는 전국적으로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과 동률인 2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자민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28%의 지지율을 얻어 이시바의 23%를 능가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하지만 환경상 외에는 이렇다 한 중책을 맡아본 적이 없다는 점이 자주 지적되고 있다. 5선 의원이라는 점에서 해리스처럼 희미한 존재감이라고까지 말할 순 없지만 국정운영 능력은 미지수라는 얘기다.
일본 언론에서도 그와 관련된 평가로 주로 '경험 부족'을 언급한다. 일부에서는 당3역(자민당 간사장·총무회장·정무조사회장)과 같은 요직을 맡아본 적이 없어 "압도적으로 경험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정계 입문 때부터 무파벌을 내세워 기성정치와 거리를 뒀다는 점이 이번에는 강점으로 작용했다. 중책을 맡은 경험은 적으나 젊음과 참신함으로 각종 스캔들에 얼룩진 자민당을 쇄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해리스와 고이즈미 모두 잘한 것(功)도 없지만 딱히 잘못한 것(過)도 없다는 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가진 '미지의 영역', 즉 능력 검증 부족은 둘을 마주하는 상대방에게는 불확실성으로 작용한다. 시장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선거 과정도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다. 해리스는 조지아와 네바다 등 경합 주에서 트럼프 지지율을 앞서고 있지만 오차범위 안이다. 트럼프와의 대결에서 해리스보다도 더 우위를 보였던 힐러리 클린턴도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게다가 해리스의 지지율이 2016년 대선 레이스 당시 기록했던 클린턴 지지율에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역대급 혼전이 예고된다. 세간의 비판을 의식해 파벌을 내세우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돼 역대 가장 많은 10여명이 출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자민당 총재는 당원과 당소속 의원들이 투표로 뽑히기 때문에 앞서 언급된 세간의 지지율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결과가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주요 후보의 성향부터 불확실성 투성이다. (국제경제부 문정현 기자)
jhmoon@yna.co.kr
문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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