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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극의 파인앤썰] 배보다 배꼽이 커진 정책대출

24.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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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정책대출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에 의한 정책대출이 가계대출과 집값 상승을 자극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토교통부는 서민들에 대한 혜택을 강조하면서 정책대출을 줄이는 일은 없을 것이란 입장이지만, 가계대출을 관리해야 하는 금융당국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러는 사이 지난달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이 10조원이나 늘었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영끌 쪽의 '패닉 바잉'으로 가계대출이 폭증했던 때와 비슷하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치솟는 상황에서 9월부터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으로 대표되는 대출 규제가 강화되기 전에 막바지 선수요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대출수요자의 눈치를 보느라 가계부채를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국민들의 세금으로 시행하는 디딤돌·버팀목 대출이 가계대출 증가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축소를 위해 금융권과 씨름하는 사이 한편에서는 정부가 대출을 늘리는 탓이다.

실제로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이 총 30조2천억원 늘었는데 같은 기간 디딤돌·버팀목 대출 등 정책대출이 18조5천억원이나 급증했다. 디딤돌·버팀목 대출이 매월 4조원 정도씩 늘어나면서, 이 기간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의 60%를 정책대출이 차지했다.

금융당국의 입장은 난처할 수밖에 없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12일 기자간담회에서 "금융당국과 국토부 모두 신생아·신혼부부 등 정책대출의 목적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면서도 "정책 목적과 약속을 지키면서 정책대출이 늘어나는 속도는 필요하면 제어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행도 12일 발간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수도권 집값 상승의 원인 중 하나로 정책대출 확대를 직접 지목했다. 반면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9일 "디딤돌·버팀목·신생아 대출 등 정책대출이 집값을 끌어올린 직접적 원인은 아니고 정책대출을 줄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 다른 뉘앙스다. 정책 엇박자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기본적으로 정책 기능은 시장 기능을 보완하는 수준에 그치는 게 맞다. 지금은 부동산으로 유입되는 자금이 민간 영역에서도 차고도 넘친다. 오히려 금융당국이 시중은행들의 과도한 주택담보대출을 막느라 애를 먹는 처지다. 시장을 통해서도 유동성이 충분하게 공급되는 마당에 굳이 정부가 세금을 써가면서까지 부동산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게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

정책대출의 취지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도 따져볼 일이다. 이 정책은 저소득 및 무주택자에 대해 주택자금의 대출이자율을 감면해 내 집 마련의 부담을 줄이고 주거생활 안정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그러나 최근 정책대출이 가계부채는 물론 집값 상승을 자극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금리 국면에서 서민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정책으로 집값이 오르는 셈이다. 정책대출이 이자 몇푼은 아껴줄 수 있겠지만, 정작 해당 정책으로 집값이 올라 대출 원금이 급증한다면 주거복지라는 당초 정책효과는커녕 수요자의 입장에서도 배보다 배꼽이 커진다.

현 정부에서 부동산정책의 핵심은 시장기능의 강화다. 시장에 맡길 것과 정부가 나설 일을 보다 명확하게 구분해서 대응하겠다는 의미다. 아무쪼록 지난 정부에서 과도한 정책기능 확대로 부동산시장을 왜곡하고 서민들에게 고스란히 피해를 안겼던 누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취재보도본부장)

eco@yna.co.kr

황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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