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전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당 소속 국회의원 20명의 추천인을 모은 총 9명이 출마해 역대급 난전이 예고되고 있다.
추천인을 필요로 하는 현행 자민당 총재 입후보 방식이 도입된 1972년 이후 종전 최다후보 기록(2008년, 2012년 각각 5명)을 훌쩍 넘어섰다.
이번 선거 레이스는 기시다 후미오 현 총재가 연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내각제 국가인 일본은 집권 여당 총재가 총리직을 맡는다.
기시다의 지지율은 정권 발족 이후 초반에는 안정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였으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피격 사망으로 통일교와 자민당의 접점이 드러나면서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방문 등의 외교 성과로 지지율이 잠시 반등했으나 작년말 당내 파벌의 정치자금 문제가 결정적인 타격이 됐다. 정권 초반 한때 66%에 달하던 내각 지지율은 20%대로 추락했다.
다만 주목할 부분은 기시다의 지지율이 바닥을 기었을지언정 경제 측면의 성과는 매우 양호했다는 점이다. 차기 총리는 이 부담을 고스란히 질 전망이다.
◇ 사상최고①, 日 닛케이 지수 4만 돌파
우선 가장 뚜렷한 성과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주가다. 일본 증시의 대표적인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지수는 거품 경제 때도 도달하지 못했던 '꿈의 영역'인 40,000선을 뚫었다.
닛케이 지수는 지난 7월 중순 42,000을 넘어 기시다가 자민당 총재로 당선되기 직전일(2021년 9월 28일)에 비해 무려 40% 폭등했다.
10년 전부터 시작된 기업 거버넌스 개혁이 증시 상승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고, 여기에다 미국의 저명한 투자자 워런 버핏이 일본 종합상사주를 매수했다는 소식이 주가 강세를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일본 증시가 강세를 지속할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은 기시다 정권하에 실시된 증시 부양책 덕분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작년 4월 도쿄증권거래소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밑도는 상장사들을 대상으로 자본 효율을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공개하라고 통지했다. 주요 상장사 중에 PBR이 1배도 되지 않는 기업, 즉 보유자산을 모두 매각하고 사업을 정리한다고 가정했을 때보다 가격이 싼 기업이 전체의 43%에 달할 정도로 저평가가 심각하자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실제 일본 증시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해외 투자자들이 투자를 시작한 것도 이와 같은 저평가 해소 노력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 사상최고②, '자산 2배 증가' 정책에 가계 금융자산 '쑥'
가계 관련 경제정책 가운데서는 '새로운 소액투자 비과세제도(新NISA)' 정책을 성과로 꼽을 수 있다.
기시다는 노동자의 임금 인상과 중산층 확대를 통한 소비 진작으로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핵심 정책으로 추진해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국민의 노후 자산을 두 배로 늘리자는 취지로 2022년 말부터 시행된 '자산소득 2배 증가(자산소득배증 계획)'였고, 이를 목표로 올해 1월부터 新NISA가 추진됐다. 세제 혜택을 확대해 일본 가계에서 잠자고 있는 예금·현금 1천조엔을 투자로 흐르도록 하자는 제도다.
新NISA는 해외 투자 붐을 일으켰고 일본 증시를 밀어 올린 원동력으로도 작용했다.
올해 1~6월 해외 주식형 투신 순유입액은 6조엔(약 56조원)으로, 해당 기간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보수적인 일본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저변을 넓혔다는 평가가 나왔다.
제도 시행 이후 일본의 가계 금융자산은 더욱 불어났다. 올해 3월 말 기준 개인이 보유한 예금과 주식, 보험 등 금융자산은 2천199조엔, 현재 한화로 무려 2경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1%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 사상최고③, 美와는 달랐던 통화정책에 日 기업이익↑
일본 기업은 엔화 약세 효과를 톡톡히 봤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물가가 치솟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는 2022년 3월 이후 무려 11차례나 금리를 인상했지만 일본은행은 올해 3월에 들어서야 '마이너스 금리'를 폐기했고 7월에 찔끔(15bp) 더 올렸다.
통화정책의 방향 차이로 엔화는 올해 7월 1986년 이후 처음으로 160엔을 돌파했고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이후에야 다소 레벨을 낮췄다.
가파른 엔화 약세에 일본 외환당국은 연신 개입에 나서는 등 변동성을 낮추기 위해 애를 먹었지만, 일본 기업은 순풍에 돛을 단 배였다. 4~6월 일본 기업(금융 및 보험 제외)의 경상이익은 35조7천680억엔(약 327조6천억원)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기시다 정권 하에서는 '사상 최고'란 말이 흔하디흔했다.
◇ "기시다노믹스 기세 못 이으면 대가 상당"
일본 안팎의 언론들은 '기시다노믹스'의 성공을 시장이 호평하고 있고, 이는 후임 총리에 압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중순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의 구식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변화가 기시다의 감독 하에 일어났다고 평가했다. 오랜 기간 지속해온 기업 거버넌스 개혁과 인구 통계학적인 변화, 그리고 상황적인 요인도 영향을 줬지만 기시다가 적극적으로 정책을 추진한 성과였다는 분석이다.
기시다가 없었어도 닛케이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역대 총리들이 이루지 못한 기록을 세웠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 팩트다.
매체는 기시다의 시대가 짧고 인기가 없어서 기억 속에 빨리 사라질지 모르지만 1980년대 거품 경제 시기 이후 가장 크게 삶을 바꿔놓는 3년간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후임자가 이 기세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혹자는 이와 같은 눈부신 경제 성과도 지지율로는 이어지지 못했고 결국 쓸쓸한 퇴장을 해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또 다르게 보면 유례없는 경제 성과를 뒤덮을 만큼 일본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으며, 그나마 경제 성과 덕에 이 정도 버텨왔다고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저PBR주 개선은 한국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에 참고가 되기도 하는 등 일본 정책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후임자가 기시다노믹스의 기세를 이어갈지 주목된다. (국제경제부 문정현 기자)
문정현
jh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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