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적대적 인수·합병(M&A), 그리고 기업 사냥꾼. 사모펀드가 개입하는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어김없이 나오는 단어들이다. 최근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싸움에서도 익숙한 이 단어들이 등장한다. 고려아연 측은 "기업 사냥꾼 MBK파트너스의 약탈적 M&A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국내 1위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는 어쩌다 기업 사냥꾼으로 몰리게 됐을까. 약탈적이고 적대적 M&A 시도라는 고려아연 측의 주장은 맞는 얘기일까.
[연합뉴스 자료사진]
고려아연 적대적 M&A 논란은 고려아연과 영풍 간의 경영권 분쟁에 MBK파트너스가 뛰어들면서 시작됐다. MBK파트너스는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선 상태다. 고려아연은 고(故) 장병화·최기호 창업주가 세운 회사로, 영풍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75년간 이어진 이들 가족의 동업 관계는 이번 분쟁으로 완전히 끝이 났다.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군은 다음달 4일까지 고려아연 지분 약 7~14.6%를 공개 매수한다. 최종적으로는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지분을 영풍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보다 1주 더 갖게 된다. 업계에선 공개매수 최저 한도인 지분 7% 정도만 확보해도 영풍과 MBK 측에 경영권이 넘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아연 측이 MBK파트너스를 두고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기업 사냥꾼에 불과하다며 여론전에 나선 이유다. 이에 발맞춰 고려아연 공장이 있는 울산시와 일부 소액주주 등도 MBK의 적대적 M&A에 반대한다는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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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측 주장대로 적대적 M&A 시도는 맞을까. 적대적 M&A란 대주주나 기업과 협의 없이 이뤄지는 기업지배권 탈취를 의미한다. 이 해석으로는 MBK와 영풍 연합군의 지분 확보 시도가 '적대적인 행위'라 보기 어렵다. 고려아연의 단일 최대주주가 영풍(25.40%)으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은 공정거래법상 영풍그룹 기업집단의 계열사이기도 하다. 최대주주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공개매수라면 적대적 M&A에 해당하지 않는단 얘기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MBK파트너스가 추후 주도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기업 사냥꾼의 적대적 M&A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적대적 M&A와 기업 사냥꾼이란 단어에 대한 일반주주 등의 인식이 비우호적이란 점을 겨냥한 것이다.
적대적 M&A는 엄연히 합법적인 절차다. 각종 첨단 금융기법과 법률적 지식이 동원된다는 점에서 M&A의 꽃이라 불리기도 한다. 기업을 하나의 상품으로 보는 미국과 영국 등의 기업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한국에선 유독 인식이 좋지 않다. 국외 헤지펀드가 주도했던 소버린 사태와 칼 아이칸 사태 등에서 국부 유출 논란이 집중적으로 부각된 탓이다. 이는 적대적 M&A 시도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키운 계기가 됐다. 과거 국내에서 적대적 M&A가 원천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1968년 제정된 자본시장육성법에 기초한다. 이 법은 대주주가 아닌 사람이 기업 지분 10% 이상을 인수하려면 기존 대주주에게서 매입해야 한다는 규정을 담았다. 1993년 이 법이 사라졌는데,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적대적 M&A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남아 있다.
적대적 M&A에 대한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비판론자들은 적대적 M&A의 남발은 기업의 투자를 줄이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고 지적한다. 자사주 매입을 비롯해 경영권 방어에 많은 자금이 들어간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긍정론자들은 적대적 M&A는 기업가치를 높이는 강력한 수단이라고 본다. 적대적 M&A 시도가 지배주주에게는 위협적이지만, 다수의 일반주주에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단 얘기다. 과거 소버린 사태를 지나며 SK㈜ 주가가 크게 오른 것이나, 칼 아이칸 사태 이후 KT&G의 주주환원책이 대폭 강화됐다는 점은 순기능으로 봐야 한다.
적대적 M&A는 기업의 지배권을 가장 효율적인 경영자에게 이전하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지배주주가 기업뿐 아니라 기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경영을 제대로 한다면 M&A 시도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다. 지배구조 전문가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대적 M&A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라고 본다.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가장 적합한 플레이어를 선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면 필요악이라 보는 게 타당하다. (취재보도본부 기업금융부장)
chhan@yna.co.kr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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