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진우 기자 = "과거 금리 인하기에는 거시건전성 관리 방안이 시행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정부의 부채관리 의지가 강한 것이 다르다"
지난주 한국은행이 금융안정상황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향후 기준금리 인하에도 부동산 및 가계부채가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종렬 부총재보가 내놓은 대답이다.
장정수 금융안정국장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장 국장은 "과거도 금리 인하기 주택가격이 오르고 가계부채가 늘어 여러 대책이 나왔지만, 지금 가장 다른 것은 가계부채 비율 관리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라고 했다.
한국은행은 '데이터'와 이를 바탕으로 한 수리적인 경제분석 모델을 금과옥조로 삼는데 '정부 의지'를 전면에 내세운 커뮤니케이션은 다소 낯선게 사실이다.
실제로 같은날 한은이 보고서에서 내놓은 데이터는 조금 다른 말을 한다.
한은은 설문조사와 시중의 금리 수준에 반영된 금리 인하 경로를 가정하고 금융취약성지수(FVI)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시나리오별 예측을 했다. FVI는 민간신용, 주택 등 자산가격 등의 움직임으로 금융 불균형의 축적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시나리오 분석에 따르면 이미 발표된 스트레스DSR 2단계 및 3단계 등의 조치가 적용되는 상황에서는 FVI가 올해 말 36.2를 기록하고, 2026년 말에는 42.4로 오르는 것으로 예상됐다. 최근 거론되는 DSR 적용 범위 확대 등을 추가로 반영할 경우에는 FVI가 올해 말 36.1, 2026년 말 40.0을 기록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어느 시나리오를 봐도 FVI가 장기평균(2008년~2024년 2분기) 34.9를 훌쩍 넘어선다.
한국은행
한은은 지난해 6월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1996년 이후 데이터를 보면 "금융 취약성이 장기평균보다 심화했던 시기는 1년 후 경제성장률이 장기평균을 크게 하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DSR 범위 확대 등의 추가 대출 규제가 시행된다고 해도 금리 인하에 돌입하면 금융불균형이 향후 성장을 위협할 정도로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이 '데이터'가 제시하는 경로인 셈이다.
이전 정부와는 다르다면서 강한 신뢰를 보낸 정부의 대출 규제도 불과 2주 전에는 다른 평가가 나왔었다.
한은은 9월 12일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통해 거시건전성 정책 기조를 수치화해서 내놓았다. 이 지수는 지난 2022년 5월 35까지 올랐다가 이번 정부 들어 급격히 하락해 지난해 1월부터 20선을 하회했다. 이 지수는 2017년 8월 이후 지난해 1월 이전까지는 20을 하회한 적이 없다. 정부가 LTV·DTI 등 기존의 규제를 대폭 완화해온 영향이다.
물론 정부는 기존 LTV 중심 대신 소득대비 대출 규모를 제한하는 DSR 체제로 규제를 개편하고, 9월부터 스트레스DSR 2단계 등 보다 강화된 조치를 시행하는 중이다. LTV와 DSR은 방식이 다른 만큼 규제의 강도를 1:1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 지난 정부에서도 급등하는 집값과 가계대출을 잡기 위한 규제 의지가 지금보다 덜하지는 않았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상황이 악화하면 추가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 역시 과거 정부 내내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지난 정부의 실패가 의지 부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매우 완화적인 금리라는 기저 여건과 찔끔찔끔 규제를 강화하며 '뒷북' 혹은 '용두사미' 논란을 자초했던 미숙했던 운용 등이 이유로 거론된다.
근본적으로는 규제로 가격 변수를 억누를 수 없다는 시각도 강한데, 이는 이번 정부가 내세운 모토였기도 하다.
어떻든 한은은 정부 대책이 집값 및 부채 상황을 일단 진정시켰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10월 혹은 11월에는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될 가능성이 커졌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고금리 시기 달성했어야 하는 충분한 디레버리징과 수도권 부동산 가격 안정의 기회를 잃었다. 따라서 기준금리가 인하 기조로 돌아선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금융 불균형 재누증에 대한 완충지대도 많지 않다. 삐끗하면 낭떠러지인 셈이다.
신성환 금통위원은 최근 간담회에서 서울의 올해 가처분소득 대비 주택가격이 24.9배로 뉴욕 11.0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점을 지적하면서 "주택가격의 버블 가능성이 증가했다"고 평가했다. 이창용 총재도 지난주에 "어떻게든 서울 집값을 잡아야 한다"는 발언을 또 한 번 내놨다.
내수 부진 대응을 위해 조만간 금리 인하로 돌아서야 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부동산 및 가계부채 여건도 그만큼 긴박하다는 속내일 테다.
한은이 정부에 보낸 신뢰가 시나리오별 액션 플랜 등이 철저하게 구비된 상태에서 나온 근거 있는 믿음이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내수경기 부진을 보완하기 위해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면 이로 인해 발생할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DSR 적용 범위의 확대 등 규제 강화도 곧바로 동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시장 상황을 보아가면서 대응책을 마련하면 된다는 안이한 자세로는 지난 정부의 '뒷북 대응'이란 실수가 되풀이되지 말란 법도 없다.
jwoh@yna.co.kr
오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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