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최종 소명 절차 후 전원회의 일정 확정될 듯
정보교환으로 '경쟁 제한' 입증해야…해 넘길 가능성↑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윤슬기 기자 = 4대 은행이 담보대출을 취급하면서 담보인정비율(LTV) 거래조건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 행위를 두고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으로 보고 제재 절차에 들어간 가운데 은행권이 막판 법리적 소명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업자 간 정보 교환 행위를 담합으로 제재하는 첫 사례일뿐더러 수천억원대 과징금이 거론되는 사건인 만큼 공정위도 은행도 마지막까지 법리적 쟁점에 대해 추가적인 논리 근거를 최대한 끌어모으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번 결론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통신 요금, 주류 등 줄줄이 대기 중인 서민생활 관련 담합사건들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파장이 클 전망이다.
◇공정위, 사실상 정보교환 '담합' 결론
10일 금융권 등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이르면 다음달 중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을 대상으로 LTV 담합 혐의에 대한 최종 소명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전원회의에서 결론을 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피심인의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로, 은행별로 따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보통 전원회의 안건이 한 달 전 확정되고 10일 이전 피심인과 관계자들에게 출석통지를 해야 한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빨라야 12월 전원회의에나 안건이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각 은행들은 지난 1월 공정위로부터 심사보고서를 받은 직후부터 대형 로펌을 선정해 적극 소명해왔다.
공정위 심의관이 낸 경제산업분석 보고서에 반박하는 경제분석 의견서만 7차례나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분석은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따질때 사업자의 행위가 시장·소비자 등에 미치는 영향을 경제학 등에 기초해 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2월 윤 대통령이 금융·통신 분야 독과점 문제 해결을 지시한 후 공정위는 4대 은행이 LTV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면서 시장 경쟁을 제한했다고 판단하고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6월에는 추가 현장 조사도 진행했다.
조사과정에서 대출 금리를 담합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대출금리 핵심정보를 공유한 증거를 확보했다.
2020년 12월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정보를 주고받음으로써 일정한 거래 분야에서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도 담합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는 게 공정위 입장이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도 지난 6일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은행의 LTV는 부동산 위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중요한 가격 정보인데 이 부분을 교환해 비율을 정하는 것은 가격 담합으로 볼 여지가 있다"면서 "개정안 시행 이후 최초로 시행되는 담합 사건이라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만약 은행이 경쟁사의 LTV 정보를 몰랐다면 경쟁적으로 LTV를 높이면서 대출 유치에 나섰을 텐데 정보 교환으로 시장의 경쟁을 제한하고 소비자 피해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공정위는 은행들이 타행과 비교한 엑셀 산식까지 만들어 LTV를 관리해온 증거도 입수했다.
◇은행, 경제 분석만 7차례…대형 로펌 앞에서 반박
반면 은행들은 LTV 정보 공유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일에 불과하다며 적극 반박하고 있다.
은행들은 LTV 관련 담합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은행의 대출금리는 기준금리가 되는 코픽스(COFIX)에 가산금리를 더한 뒤 우대금리를 뺀 값으로 결정되는데 은행별 가산·우대금리 산정 기준이 모두 다르다.
또 이번 법리 싸움의 주요 쟁점인 정보 교환으로 인한 '부당이득' 여부에 대해서도 은행들은 실질적 이득이 없는 만큼, 정보를 담합할 유인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은행들이 LTV를 보수적으로 산정했다는 것은 담보가치를 낮게 평가해 대출한도를 줄였다는 의미다.
LTV를 높게 잡아 대출을 더 많이 해줘 이익을 취하면 담합으로 볼 여지가 있겠지만, 금융당국이 지역별로 담보 관리 기준을 정해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LTV를 더 낮췄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은행들은 항변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공정위의 논리는 은행들의 정보교환으로 LTV를 낮춰 금리를 적용해 소비자의 이익을 저해했다는 것인데 오히려 경쟁을 통해 LTV을 높였기 때문에 사실은 그 반대"라며 "정보 교환 행위로 경쟁이 줄었다는 점 자체만으로 제재할 경우 모든 업종이 담합 제재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수천억 과징금, RWA에 부담…BIS 비율 타격까지
그럼에도 공정위가 '담합'이라는 결론을 내릴 경우 은행들은 최대 1조원대 과징금을 물을 처지에 놓이게 된다.
공정거래법상 담합으로 벌어들인 매출액의 최대 20%까지 과징금이 부과되는데, 담합 기간으로 지목된 2022년 이들 4개 은행의 이자수익은 40조원을 넘긴 수준이기 때문이다.
은행별로 수천억의 과징금을 맞을 경우 재무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우려된다.
위험가중자산(RWA)은 신용·시장 리스크에 운영 리스크를 합산해 결정되는데, 과징금이 운영 리스크 산출에 포함돼 RWA가 늘어나면 은행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등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더욱이 운영 리스크는 바젤3 국제 기준에 따라 향후 10년간 자본 비율에도 영향을 준다.
뿐만 아니라 업계에선 은행들이 공정위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해 법리다툼 끝에 소송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이미 훼손된 평판 리스크와 사회적 비판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란 걱정도 크다.
공정위도 이번 제재를 앞두고 내부적으로 고민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최근까지도 경쟁산업분석을 추가로 실시하며 안건 상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보교환 자체만으로 문제를 제기한 첫 제재의 파장이 상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원회의 구성원들 간 이견이 있을 수 있어 한 번에 결론내기 힘들어 재논의 가능성도 점쳐진다.
정부는 올해 초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서민생활과 밀접한 품목의 불공정 행위를 집중 점검하고 석유와 주류, 금융,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에 대한 경쟁제한 요소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공정위는 현재 통신 3사의 판매장려금 담합 혐의로 최대 5조원대의 과징금을 부과를 검토 중이며, 주류 도매업체의 납품가 담합, 돼지고기 가공업체의 가격 담합 등도 조사 중이다.
hjlee@yna.co.kr
이현정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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