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월권(越權)은 정치의 영역이다. 내 권한 밖의, 남의 권한을 침범하는 일은 힘의 논리 아래에서나 가능하다. 그 힘은 곧 권력이다. 권력은 미래의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월권을 향한 질타가 심상찮다. 지난 17일 열린 국정감사에서는 이 원장을 향한 질타가 쏟아졌다. 질타는 당적을 가리지 않았다. 여당 의원들조차 이 원장의 행보마다 재량권을 넘어선 일이라 비판했다. 밖에서는 이를 관치금융을 넘어 정치금융이라 불렀다.
우리금융지주의 보험사 인수를 향한 이 원장의 태도는 대표적인 권한 남용 사례로도 지목됐다. 전직 최고경영자(CEO)와 관련한 수백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은 변명의 여지 없는 희대의 잘못이지만, 이 원장이 과도하게 우리금융을 옥죄려 한다는 게 골자였다.
그래서일까. 며칠 새 공기가 사뭇 달라졌다. 우리금융을 향했던 냉랭한 시선의 한기가 잦아들었다. 임종룡 현 회장의 거취를 묻던 입들도 이제는 '할 일이 남았다'고 말한다. 과거에 대한 책임을 현재에 묻는 것은, 더 나아가 미래의 발목마저 잡는 것은 월권이라는 얘기다.
금감원도 곤혹스럽다. 잇단 정치금융 지적에 금감원 직원들 사이에서도 혼란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우리금융에 나가 있는 검사역들도 그렇다. 내년에 실시할 정기 검사를 앞당겨 전직 CEO와 연루된 부당대출을 조사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검사 방향성을 두고 고민이 크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함께 진행되고 있는 경영실태평가도 마찬가지다. 우리금융이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2등급 이상의 종합평가 등급을 받아야 한다. 사실 주요 시중은행, 그것도 은행금융지주가 1등급(우수)·2등급(양호)·3등급(보통)·4등급(취약)·5등급(위험)으로 나누어진 경영실태평가에서 '보통' 이하로 평가되긴 쉽지 않다. 자본 적정성이나 자산 건전성, 수익성, 유동성 모두 '지켜야만 하는' 계량 지표가 명확한 만큼 정량평가 성적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성평가 영역이다. 경영관리의 적정성이나 내부통제, 리스크관리를 평가하는 비계량 항목은 사실상 정성평가의 영역이다. 지배구조나 내부통제가 적정한지 여부는 평가자의 마음에 달렸다.
몇 년 전 금감원의 DGB금융지주 경영실태평가 결과가 금융권에 회자한 적이 있다. 당시 하이투자증권 인수를 앞두고 있었던 DGB금융은 계량 평가에서 2등급을 받았지만, 종합등급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비계량 평가에서 최하위 점수를 받아서다. 당시에도 CEO를 둘러싼 내부통제 이슈가 원인이 됐다지만, 금감원 내부에서조차 평가가 지나치게 박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결국 DGB금융은 경영실태평가 후속 조치로 금감원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일 년 넘게 금감원에 경영 현안을 수시로 보고했다. 한동안 모든 경영을 감독받은 셈이다.
우리금융 역시 DGB금융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반드시 품어야만 하는 동양생명과 ABL생명이 볼모가 돼, 금감원의 이런저런 요구를 받을 수밖에 없으리란 게 중론이다.
물론 금감원이라고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결국 해를 넘기게 된 우리금융의 보험사 인수가 자칫 외부 시선처럼 월권 때문은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가뜩이나 은행에 대한 의존도가 큰 우리금융이 종합금융그룹으로 나가는 데 정치금융이란 걸림돌이 놓인 건 아닌지 이런저런 말들도 많다.
공기가 달라졌다지만, 한기가 조금 가셨을 뿐이다. 우리금융을 향한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그만큼 금감원을 향한 시선도 차갑다. 이 원장이 떠난 후 금감원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너무 크다. (금융부 정지서 기자)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감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위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4.10.17 utzza@yna.co.kr
jsjeong@yna.co.kr
정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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