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반도체는 국가 기간산업으로 첨단기술 혁신을 견인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 산업입니다. 국격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자부심으로 최선을 다해주길 바랍니다."
국내 대표 반도체기업인 삼성전자[005930]나 SK하이닉스[000660] 최고경영진이 임직원을 격려하며 했을 법한 당부다. 하지만 실제 이 말을 한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다. 22일 한화의 미래 기술 연구개발(R&D) 전진기지인 '판교 R&D 캠퍼스'를 찾은 자리에서다. 김 회장의 반도체 관련 언급이 외부에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판교 R&D 캠퍼스는 한화정밀기계와 한화비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 등 제조 계열사의 각종 신기술이 탄생하는 곳이다. 김 회장은 지난 8월 에어로스페이스에서 인적분할해 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 자회사로 거듭난 한화정밀기계와 한화비전 등에 힘을 실어주고 기술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이번 현장 경영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출처:한화그룹]
구체적으로 해당 발언은 김 회장이 한화정밀기계의 고대역폭메모리(HBM)용 TC본더 장비 시연을 지켜보던 도중 나왔다.
작년 말 ㈜한화[000880] 모멘텀부문의 반도체 장비 사업부를 양수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반도체 전공정으로 확대한 한화정밀기계는 최근 HBM 제조의 핵심인 TC본더 기술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TC본더는 열 압착 방식으로 가공을 완료한 반도체 칩을 회로 기판에 부착하는 장비로, '인공지능(AI) 시대'에 주목받는 고부가 HBM의 수율을 좌우할 만큼 중요도가 높다.
최근엔 SK하이닉스에 TC본더를 공급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 중이다. SK하이닉스는 현재 HBM을 만드는 3개사 중 기술력과 양산 경험 측면에서 가장 앞서 있는 회사다. 한화정밀기계 입장에선 글로벌 'AI 붐'에 올라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긴 셈이다.
이 과정에서 일종의 해프닝이 있었다. 지난 16일 한화정밀기계의 TC본더가 SK하이닉스의 퀄 테스트에서 탈락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것이다. 모회사인 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 주가가 하루 만에 10.8% 빠질 정도로 시장에 미친 여파가 컸다.
그러자 한화정밀기계는 즉시 반박자료를 내고 "현재 테스트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검증이 완료되는 대로 납품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진화에 나섰다. 회사 홈페이지 첫 화면에도 해당 내용을 걸었다. 업계에선 기업간 거래(B2B) 장비 사업을 하는 회사가 언론 보도에 이처럼 적극 대응하는 건 이례적이란 얘기가 나왔다.
[출처:한화정밀기계 홈페이지 캡처]
특히 오보에 반박하는 과정에서 한화정밀기계가 직접 "SK하이닉스에 테스트용 장비를 납품해 검증을 진행 중"이라는 점을 공개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전부터 기정사실로 됐지만 회사 측이 공식적으로 사실을 확인하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이렇게 고객사 이름을 명시해 비즈니스 현황을 공개하는 건 업계를 막론하고 흔치 않은 일이다. 비밀유지 의무 등이 걸려 있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서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하면 한화정밀기계가 얼마나 오류 수정을 중요하고 긴급한 사안으로 판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회사의 미래 경쟁력은 물론, 김 회장의 현장 방문 성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오보 반박'과 김 회장의 '현장 방문' 사이에는 '엿새'란 물리적 시차가 있다. 통상 그룹 총수의 사업장 방문은 미리 통보된다는 걸 고려하면 이 중 어느 것이 먼저 결정됐는 지는 알 수 없다. 잘못된 내용을 빠르게 바로 잡아 김 회장의 방문이 성사됐을 수도 있고, 반대로 현장 방문이 예정된 상태에서 오보가 나와 긴급 진화에 나선 것일 수도 있다. 전후 사실관계를 떠나 한화정밀기계는 적극적인 대응으로 둘 다 성공리에 마무리지었다.
무엇보다 시장에 분명한 '시그널'을 줬다. 김 회장이 직접 시연을 지켜보고 담당 임직원을 격려했다는 건 사실상 납품 성사가 임박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조금이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다면 김 회장 입에서 '반도체'란 단어가 절대 나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부 유수진 기자)
sjyoo@yna.co.kr
유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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