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흘린 개미 "한국 주식의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서영태 기자 = "15층인데요" "당장 구속시켜라" "한국 주식의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대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한 30일 종목토론방 등에서 개인투자자의 원성이 높아졌다. 150만 원을 웃돌며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9위에 오른 지 하루 만에 하한가를 치며 17위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연합인포맥스 신주식종합(화면번호 3536)에 따르면 고려아연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29.94% 폭락한 108만1천 원에 마감됐다.
경영권 분쟁으로 지난 9월 중순부터 주가가 급등했고, 양측의 공개매수가 모두 끝난 24일 이후에도 주가는 폭등세를 이어갔다. 추가적인 지분 매입을 기대한 투기심리가 24일(29.91%)·25일(10.11%)·28일(3.83%)·29일(18.60%)에 연달아 주가를 밀어올린 것이다.
전날 18.60% 오르며 154만3천 원을 기록했던 주가를 끌어내려진 배경은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공시다. 이날 오전 열린 고려아연 이사회에서 373만2천650주를 주당 67만 원에 새로 발행해 2조5천억 원을 조달하는 안건이 통과됐다.
시장에서는 150만 원을 웃돌았던 주가의 절반도 안 되는 신주발행가를 두고 지적이 나온다. 신주발행가는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가(89만 원)보다 저렴한 가격이다. 고려아연이 주식을 비싸게 사고는 24%가량 싸게 파는 셈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논리가 안 맞는 유증"이라며 "결국 기존 주주들한테 손해가 가는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아무리 저가라도 주주배정 유상증자였다면 기존 주주한테 손해가 가지 않을 텐데 일반공모 방식을 택했다"고 덧붙였다.
낮은 발행가 못지않게 유상증자 자체와 그 방식을 둘러싼 시장의 시각은 비판적이다.
경영권 분쟁 중에 유상증자를 하는 경우가 과거에도 더러 있었지만, 시가총액 10위권의 회사가 대규모 유증으로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정당성을 부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다른 운용사 관계자는 "밸류업과 주주가치를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코스닥 소형주도 아닌 회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에 관해 외국인한테 설명하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고려아연이 택한 일반공모 방식에는 경영권 방어라는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평가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대한민국 국가전략산업 육성 등에 매진하고자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일반공모 유증으로 '국민기업'으로의 도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반공모 방식으로는 모집주식 80%에 대해 일반공모를 실시하고, 나머지 20%는 법에 따라 우리사주조합에 배정한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에 우호적인 우리사주조합이 지분을 늘릴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고려아연이 소각할 자사주를 제외한 발행주식의 20%에 해당하는 신주 가운데 20%가 우리사주조합의 손에 들어가면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율은 4%포인트 증가한다.
또한 일반공모 청약자에 대해서는 모집주식 수의 최대 3%만 배정하기에 MBK·영풍 측이 늘릴 수 있는 지분율은 0.6%포인트에 불과하다.
MBK·영풍 측에서는 성명서를 통해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결정은 기존 주주들과 시장 질서를 유린하는 행위라고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도 일반공모 유상증자에서 한 청약자가 가져갈 물량을 3%로 제한하는 게 전례가 없는 일인 데다, 법리적으로 가능한 조항인지 불명확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고려아연에 대한 투자자의 여론이 거세진 가운데 고려아연이 자충수를 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최윤범 회장과 MBK·영풍 모두 과반 지분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가운데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국민연금이 최 회장을 지지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다른 운용사 관계자는 "예민한 시점에 국민연금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상황에서 납득이 되지 않는 결정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MBK·영풍 연합에 맞서 대항 공개매수를 진행하며 일으킨 대규모 차입금을 기존주주에 손실을 입히는 방식의 유상증자로 상환하겠다는 최 회장이 보수적인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원회를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앞서 고려아연은 하나은행·SC은행·메리츠증권·한국투자증권·KB증권 등에서 총 2조3천억 원을 빌렸다.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할 2조5천억 원으로 이 돈을 갚는다면 최 회장이 기존주주에 손해를 입혀가며 새로운 주주로부터 조달한 자금으로 자신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셈이다.
ytseo@yna.co.kr
서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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