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2019년 6월 30일.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은 수많은 취재진으로 북새통이었다.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대한민국 굴지의 재벌 총수들을 불러 모았다.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의 총수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속속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행사는 간담회라기보다는 트럼프의 일장 연설과 '협박'을 들어야 하는 자리였다. TV 생중계 속에 비친 총수들의 표정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어색함 그 자체였다.
간담회였지만 총수들에겐 발언 기회가 없었다. 트럼프는 30분 동안 자기 자랑을 늘어놨고, 결론은 "그동안 투자해줘서 고맙다. 지금이 적기이니 더 투자해 달라"였다. 미국에 와서 지갑을 더 열었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해외 정상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면 으레 기업인들을 만나 자국에 투자해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그날은 통상의 모습과는 분명 달랐다. 미국은 당시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타깃은 화웨이였다.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을 콕 집어 사실상 죽이기에 들어간 것이었다. 우리 기업들은 트럼프의 요청이 액면 그대로의 요청이 아닌 협박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대기업 관계자는 "너무나도 힘든 자리였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11월 5일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냐 해리스냐를 두고 세상은 큰 변화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초박빙 양상을 보이고 있어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인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트럼프의 복귀 가능성을 점치는 예측이 적지 않다. '어게인 트럼프'. 만일 트럼프가 다시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 경제는 어느 방향으로 갈까. 그의 공약을 보면 대략적인 예측이 가능하겠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성향을 고려하면 예측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재벌 총수들을 다시 불러 모아 일장 연설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금융시장의 혼란과 변동성 확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번 겪어봤지만, 그래도 여전히 두렵다는 경제주체들이 많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내놓은 '2024 미국 대선: 미국 통상정책의 경제적 영향 분석' 보고서 내용은 암담하다. 모든 수입품에 대해 보편적 기본관세 10~20%를, 중국산 수입품에는 6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을 토대로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분석한 보고서다. 트럼프가 당선돼 실제 그런 계획을 실행한다면 우리나라의 대미(對美) 수출액은 무려 152억~304억달러, 우리 돈으로 21조~42조원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액은 222억~448억달러(31조~62조원)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결국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0.29~0.67% 끌어 내릴 것이라고 했다.
민간연구소인 포스코경영연구소는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잠잠해지는 인플레이션을 다시 촉발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보편적 기본관세, 대중국 견제 무역정책, 이민자 제한, 감세정책, 에너지정책 등이 모두 인플레이션의 우상향을 촉진하는 요인들이 될 것이라고 했다. 만일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독립적 통화정책까지 침해해 금리 인하를 유도한다면 이 또한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산업과 통상, 금융 등 경제 전반에 미칠 악영향이 전방위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수출로 먹고살고, 여전히 금융시장 취약성이 상존하는 우리 입장에선 '비극'이 될 전망이다. 그간 탄탄한 회복세를 보이며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돼 온 수출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3분기 실질 GDP 증가율이 0.1%로 한국은행의 전망치 0.5%를 크게 밑돌면서 '쇼크' 수준을 보인 것도 수출 둔화가 주된 요인이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올해 성장률 하방 위험이 분명 커졌다. 수출 불확실성이 커진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수출 불확실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트럼프다.
'아메리칸 퍼스트(American First)'를 천명하며 강력한 관세 정책을 통해 보호무역주의를 공언하고 있는 트럼프의 공약은 수출 중심 경제인 우리에게 직격탄이 될 수 있다. 트럼프가 유세 도중 심심찮게 한국의 대미무역 흑자를 거론하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다. 중국에 대한 압박이 이전보다 더 거세질 것이란 점도 우려된다. 한은은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따라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 연계 생산이 6%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정부와 기업이 나름대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겠지만, 대비한다고 우리 뜻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기에 더 우려된다. 그래도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대비책을 준비해 둬야 충격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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