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고무줄 회계' 타깃이 된 무·저해지…보험사 자본 더 쌓는다

24.11.04.
읽는시간 0

美 보험사 무해지 상품 탓 파산…보험사, 조달시장서 발행 러시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금융당국이 새 회계제도 IFRS17 체제 아래 보험사들의 재무제표를 '고무줄 회계'라고 정면 비판하고 나선 것은 무·저해지 상품을 둘러싼 과열 경쟁 때문이다.

결산 시점마다 '최적'의 계리가정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의 맹점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보험손익을 과도하게 해석해온 최근의 관행이 미래의 소비자 손실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4일 금융당국이 발표한 보험사 건전성 감독 강화방안의 핵심은 킥스의 해지위험액이 리스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보수적'으로 자본을 쌓도록 한 게 골자다.

제도는 보험회사의 모든 자산·부채의 공정가치를 평가하는 건전성회계(PAP·Prudential Accounting Principles)이 기반이다.

이 과정에서 보험사는 배당이나 자본성증권 등 손실흡수성이 없는 자본은 차감하고 가용자본 인정 한도 내 후순위채권과 같은 손실흡수성이 있는 부채는 가산해 가용자본을 산출한다.

더불어 요구자본은 신뢰수준 99.5% 이하로 발생가능한 위험을 측정해 산출한다.

하지만 그간 킥스 산출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해지 위험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무·저해지 상품은 표준형과 위험 방향이 달라 현재의 방식으로 위험액을 산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무·저해지 상품은 월 보험료가 10~40% 싼 대신 해지환급금이 없거나 일반 보험상품보다 훨씬 적은 상품이다. 보장은 일반 보험상품과 동일하게 받을 수 있어 끝까지 유지하면 소비자에게 유리하다.

무·저해지 상품의 시작은 2015년 7월 지금의 신한라이프가 된 오렌지라이프가 선보인 '용감한 오렌지 종신보험'이었다. 당시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업계의 경쟁을 촉발, 국내 모든 보험사가 앞다퉈 건강·종신·치매·어린이 보험을 무·저해지 보험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보험사들의 가격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보험 상품을 만들 때 예정해지율을 높여 보험료를 낮추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여기에 IFRS17과 함께 킥스라는 새 건전성 제도가 도입되면서 현재 시점에서 대량해지 충격을 부여할 때 환급금이 없거나 적고, 납입 후반부 계약의 경우 대량 해지가 들어와도 오히려 순자산이 늘어나는 정반대의 사례가 많아진게 결정적이었다.

특히 업계의 CSM 확대 경쟁이 과도해지면서 이런 정반대의 사례는 보험사가 계리가정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활용하는 틈을 제공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상품 특성에 맞춰 표준형과 다른 방식으로 무·저해지환급형 상품의 해지위험액을 분리해서 산출토록 했다. 올해 결산부터는 보험사의 해지위험액은 표준형의 해지위험에 무·저해지의 해지위험이 더해진 값으로 산출되는 셈이다.

대량해지가 발생할 경우의 시나리오도 개선했다.

해지시 환급금이 적거나 없는 경우 계약자가 해지에 따른 불리함을 인지하고 해지를 유보할 가능성을 고려해 해지시 순자산이 증가하는 경우에 대해선 해지율 감소 충격을 적용토록 했다. 금융당국은 캐나다 생명보험자본적정성제도(LICAT)와 동일하게 해지율 40% 하락 충격을 적용하게 할 방침이다.

올해 결산부터 적용하게 될 킥스의 해지위험액 개선안을 따르면 보험사들의 킥스 비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존에 판매한 상품의 보험부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부 보험사의 경우 조(兆) 단위로 CSM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결국 보험사들은 자본을 더 쌓을 수밖에 없다. 떨어진 킥스 비율을 개선하려면 자본확충을 위한 증자나 자본성증권 발행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에 일부 손해보험사의 경우 금융당국과의 의견 수렴 과정에서 제도 변경에 부정적인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단시간 내 보험사의 자본 확충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점에서다.

금융당국은 해지 시에도 순자산이 늘어나는 계리가정은 해석의 공백을 악용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모순인 만큼 수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애초에 상품 설계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예상치 못한 보험계약 해지는 언제든지 시형될 수 있는 만큼, 보험사의 건전성이 악화한다면 보험료 인상이나 보험금 지급 불능과 같은 더 큰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사전에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과도한 무·저해지 상품의 판매가 독이 된 사례가 있었다.

미국의 펜 트리티(Penn Treaty)는 장기간병보험을 무해지 환급형으로 판매해 2009년 회생절차에 들어간 후 2017년 최종 파산했다. 보험사가 해지율 리스크를 잘못 인식해 부도가 난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당국이 연내 보험업감독 업무시행세칙을 개정해 올해 결산부터 이를 적용토록 하면서 현재 보험사들은 자본확충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보험사들이 발행 시장을 두드리며 적극적인 조달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대형 손보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킥스 개선안은 올해 초부터 어느 정도 이야기가 있어서 선제 자본확충을 통한 대비가 가능했지만 예상보다 그 정도가 센 것은 사실"이라며 "특히 중소형사의 경우 킥스 비율을 끌어올리려면 꽤 많은 자본이 필요해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jsjeong@yna.co.kr

정지서

정지서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와 KB Think 글자가 함께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입니다. KB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