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기자가 태어날 무렵 한국의 정치제도는 '10월 유신' 이후 도입된 '한국식 민주주의'였다.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한을 사실상 대통령 한 사람이 독점하는 제도다. 국회의원과 법관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그 대통령은 종신직이다. '한국식 민주주의'에서 한국식이 뜻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의미다.
어떤 단어에 '뉴(new)'가 붙는 것은 이전에 없던 것이 도입됐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앞에 다시 '한국형'이 들어간 것은 앞서 한국식 민주주의 사례에서 보았듯, 원래 단어의 뜻과 다르거나 혹은 반대된다는 의미일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하루 전 한국금융학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정책심포지엄에서 수도권 주택시장의 해법으로 '한국형 뉴 리츠'를 제시했다. '뉴(new)'만으로 부족해 '한국형'까지 가져왔다. 왜 그럴까.
[출처: 한국은행]
부동산 개발사업단계에서 작동하는 각종 리츠의 형태를 언급하는 것은 복잡해지므로 간단하게 보도된 내용으로 살펴보자. 아파트를 자산으로 하는 리츠가 있고 여기에 무주택자인 투자자가 1억원을 투자하고 입주권을 얻는다. 입주한 뒤 월 250만원의 임대료를 낸다. 그리고 그가 낸 임대료는 다시 리츠 투자의 대가로 돌아온다.
한마디로 내가 낸 돈이 다시 내 주머니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고심한 통화당국을 위해 좀 더 살펴보자.
한국형 뉴리츠는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 10억원을 기준으로 월 임대료 250만원을 상정했다. 자산가격에 비춰본 임대료 수익은 연 3%다. 지금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3.25%이니 기준금리만도 못한 투자수익을 주는 셈이다. 이것도 명목 비교이고 운영에 드는 각종 비용,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하면 운영수익이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런 투자를 하는 이유는 그가 무주택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기괴한 투자에도 이유는 있다. 연 10% 이상 상승하는 아파트 가격에 대한, 확신에 가까운 기대가 근거다. 운영에서는 마이너스가 나더라도 향후 매각 이익에서 벌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연 2% 물가 상승률을 정책목표로 하는 통화당국이 물가 상승률의 다섯배가 넘는 자산가격 상승을 전제로 한 상품을 정책으로 제시한 것도 아이러니하고, 투자상품인데 투자상품이라 볼 수 없는 운용 수익률을 지니고 있는 점도 기괴하다. 그러니 이것은 '뉴 리츠'일 수밖에 없다. 그것도 '한국'에서만 볼 수 있으니 '한국형 뉴 리츠'는 그야말로 적절한 명칭인 것 같기도 하다.
주거복지제도로서 '한국형 뉴 리츠'는 어떨까.
일반적으로 가계가 부담할 수 있는 주거비 상한선이 소득의 30% 수준이라고 하니 월 임대료 250만원을 부담하는 이상한 나라의 투자자는 최소 월 소득 800만원을 넘어야 한다. 그러니 한국형 뉴 리츠는 주거복지 제도도 될 수 없다. 굳이 이름 붙인다면 억대 연봉자를 위한 주거비 절감방안 정도가 적당하지 싶다.
주택시장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통화 당국자와 정책 당국자가 모여서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해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기자가 앞서 리츠가 요술 방망이냐고 지적했듯(연합인포맥스가 6월 21일 10시 56분 송고한 '[현장에서] 리츠가 부동산 문제 푸는 요술방망이인가' 참고), 지금의 주택시장 문제는 신박한(사실 그렇지도 않지만) 금융상품 하나로 해결될 만큼 간단하지 않다. '뉴(new)'에 '한국형'을 붙인들 새롭지도 않고 용도도 알 수 없다.
불교 용어로 실법(實法)과 방편(方便)이라는 말이 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달이 실법을 뜻하고 손가락이 방편을 의미한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왜 손가락을 보는가'라는 불교의 경구는 방편에 의지하다 실법을 놓치는 것을 경계하는 뜻이다.
통화당국이 주택시장을 염려하는 마음은 잘 알겠다. 그렇다면 자가 주거비를 물가 지표에 반영하는 방안부터 서두르길 바란다. 완화적 통화정책에 부풀어 오른 집값이 국민들의 주거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물가 지표를 통해 포착하고 이를 통화정책에 보다 잘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통화당국의 우선 과제가 아닐까 싶다. (산업부 남승표 기자)
(서울=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5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한국은행-한국금융학회 공동 정책 심포지엄에서 축사하고 있다. 2024.11.5 [한국은행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spnam@yna.co.kr
남승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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