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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서의 조곤조곤] IFRS17과 '죄수의 딜레마'

2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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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무질서와 혼란으로 가득 찬 고담시에 조커는 시험지를 던졌다. 폭탄을 설치한 배 두 대에 시민들을 태우고는, 상대방의 배를 먼저 폭파해 자신들의 생명을 구하라고 현혹했다. 다행히도 고담시 시민들은 조커가 놓은 덫, 그 죄수의 딜레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다. 하지만 해피엔딩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배트맨 같은 영웅도, 누군가의 희생도 없는 현실에선 죄수의 딜레마는 모두에게 불리한 선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IFRS17 도입 이후 무질서와 혼란이 난무했던 보험업계에 계리가정 가이드라인이 던져졌다. 손보사가 주름잡던 '무·저해지' 시장에 생보사마저 뛰어들면서, 금융당국은 납입 중 적용해야 할 해지율 원칙으로 '로그-선형(리니어)모형'을 제시했다.

반드시는 아니다. 완납 시점 수렴점을 0%로 하는 '선형-로그모형'도, 완납 시점 수렴점을 0.1%에 두는 '로그-로그모형' 도 선택지에 있다.

다만 원칙이 아닌 예외 모형을 선택하려면 시장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원칙모형을 선택했을 때와 보험계약마진(CSM), 최선추정부채(BEL), 요구자본과 가용자본, 킥스, 당기순이익 등 보험사의 재무 건전성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숫자를 모두 공시해야 한다. 이들이 발행하는 신종자본증권, 후순위채 같은 자본성 증권의 투자자가, 또는 이들의 건전성을 따져보는 신용평가사나 애널리스트가 그 선택이 갖는 합리성과 정당성을 평가토록 하겠다는 뜻이다.

금감원은 이번 계리가정 논의 과정 말미에 예외모형을 선택한 모든 보험사에 대한 현장점검을 추가했다. 계리법인에 대해서도 감리 근거를 신설, 외부 검증의 적정성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겠다고 한다. 쉽게 말해, '웬만하면' 원칙모형을 선택하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를 해석하는 보험업계 내 분위기는 정반대다. 원칙이 아닐 뿐 제한 조건만 충족하면 예외모형을 선택할 수 있으니 이는 예외모형에 대한 허락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미 예외모형을 염두에 둔 발 빠른 보험사 중에선 계리법인과 로펌을 접촉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현시점에선 '로그-선형모형'을 선택한 보험사보다 예외모형을 선택한 보험사는 보험료를 싸게 팔 수 있고, 기존의 CSM도 손해 보지 않는다. 싼 보험료만큼 앞으로 CSM도 더 늘어날 테니 일석이조다.

보험업계에선 가격이 '깡패'다. 브랜드별로 상품의 차이가 크지 않아 하루 새 미투 상품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보험료는 실상 보험사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경쟁력이다.

따라서 예외 모형을 적용하는 보험사가 등장한다면 다른 보험사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 대형사가 선택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가격의 논리로 시장을 더 뺏기기 전에 뛰어들어야 한다. 금융당국의 사후 조치 정도야 감내할 수 있는 셈이다.

보험사를 견제해야 하는 계리법인도 금융당국보단 보험사가 더 무섭다. 그나마 있던 시장도 회계법인에 뺏긴 계리법인들은 보험사가 일감을 맡기지 않으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을' 중의 '을'이다.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재받을지언정, 보험사의 예외모형 선택을 위해 같이 싸울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물론 예외모형을 선택한 보험사가 소수라면, 원칙모형이 갖는 힘은 세진다. 금융당국이 유도한 대로, 시장은 이를 걸러낼 힘이 있다.

하지만 다수가 예외모형을 선택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원칙모형을 선택한 보험사는 버틸 재간이 없다. 원칙보다 예외가 다수가 되는 순간, 원칙은 의미를 잃는다.

올해 초 IFRS17 도입 후 첫 결산을 앞두고 시끄러웠던 회계처리도 재차 문제가 될 수 있다. 예외모형을 적용한 보험사가, 또는 원칙모형을 적용한 보험사가 이를 수정하게 된다면 이를 오류로 볼지 추정의 변경으로 판단할지 미지수다. 전진이냐 소급이냐의 문제가 다시 부상하는 셈이다.

금융당국은 예외모형을 선택한 보험사에 상당한 부담과 노력이 따를 거라고 자신한다. 그런데도 보험사들의 의지는 생각보다 결연하다.

혹자는 은행이라면 먹혔을 법한 금융당국의 화법이 보험사에만큼은 '예외'라고 말한다. IFRS17의 자율성이 만들어주는 당장의 이익을 쉽게 포기할 보험사는 어디에도 없다는 거다.

그 옛날 시장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선택은 정부의 역할 없이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장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하지만 죄수의 딜레마에서 자신의 이익만 좇는 행위는 곧, 누구도 원치 않던 최악으로 치닫는다. 모두에게 바람직한 결과는 외부의 개입, 아니면 그들 간의 소통으로만 가능하다.

이러나저러나 원치 않는 혼란은 더 길어지게 됐다. 그저 그 혼란이 짧기를 바랄 뿐이다. (금융부 정지서 기자)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보험개혁회의 주재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차 보험개혁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4.11.4 jjaeck9@yna.co.kr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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