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경림 최정우 기자 = 노이무공(勞而無功). 지난 5개월간 두산그룹이 진행한 지배구조 재편 과정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두산그룹은 지난 7월 11일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분리한 뒤, 두산로보틱스와 흡수합병하겠다는 재편안을 발표했다. 처음부터 불합리한 가치 평가 방식 및 합병 비율 등이 문제가 됐다.
싸움의 마침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찍혔다. 혼란스러운 정국으로 원전주 대표 종목인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주식매수청구권을 감당한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권 싸움에 기업 등이 터진 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승자는 없고 모두가 패자다. 두산그룹은 시장의 신뢰를 잃었고, 주주들은 금전적·정신적 피해를 호소한다.
두산은 첫 구조 재편안 발표 이후 총 7차례에 걸쳐 정정보고서를 냈다. 분리·합병의 정당성과 비율 산정 방식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였지만, 여기서도 투자자와 그룹의 시각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의 최고 경영진들이 직접 나서서 두산에너빌리티의 자금 조달 필요성과 분리·합병의 당위성을 설명하기에 나섰다.
시간과 비용만 들어간 게 아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 투자자는 물론 기관과 금융당국으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은 두산그룹의 재편안에 학을 뗀다.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낸 곳은 미국의 헤지펀드 테톤캐피탈이다. 테톤캐피탈은 두산의 구조 재편안이 발표되자마자 밥캣 지분 전량을 매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40%를 넘기도 했던 두산밥캣의 외국인 지분율은 전일 기준 35%까지 축소된 상황이다.
의결권 자문사들 역시 기업과 주주들의 갈등에 골머리를 싸맸다. 두산그룹의 말을 듣자면, 두산에너빌리티의 투자금 확보는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합병 비율을 비롯한 주주 이익을 고려하면 도저히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안건이다.
글래스루이스와 한국ESG기준원, 한국ESG연구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지배구조자문위원회는 찬성 의견을 냈지만, ISS와 서스틴베스트, 아주기업경영연구소 등은 반대를 권고했다.
이러한 가운데 국민연금기금이 사실상 '기권'과 같은 조건부 '찬성'을 결정하면서 분위기는 부정 쪽으로 기울었다.
개인투자자들의 분노도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9월 말까지 1.55%에 불과했던 '합병 반대' 소액 주주 연대의 지분율은 12월 초에는 1.7%에 육박한다. 주주 제안을 할 수 있는 지분율(3%)까지는 아직 남아있지만, 주주총회일인 12월 12일이 다가올수록 반대표 집결은 거세졌다.
이 싸움을 위해 소액주주들은 그냥 온라인 플랫폼에서 뭉치기만 한 게 아니다. 한푼 두푼 기부해 합병 반대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적게는 1만~2만원, 많게는 수십만원까지 낸 사람도 있다고 한다. 두산그룹이 합병 이후 약속했던 주주환원 확대 역시 없던 얘기가 됐다.
2024년 12월 10일. 153일의 지루한 싸움은 두산그룹의 '합병 포기'로 찝찝한 끝을 맺는다. 두산이나 투자자나 누구 하나 득을 본 게 없는 싸움이었다. 여전히 두산에너빌리티에는 원전 선제 투자금 확보라는 과제가 남아있고, 이제 어느 투자자도 두산을 믿기가 어려워졌다.
시간을 되돌려서 두산그룹이 처음부터 시장이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밥캣과 로보틱스의 합병 비율을 산정했더라면, 합병비율은 법대로 하더라도 합병의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충분히 설득했더라면, 원안대로 임시 주주총회가 지난 9월에 이뤄졌더라면. 아무런 의미 없는 가정이 두산에 남기는 메시지는 하나다. 자승자박(自繩自縛).
klkim@yna.co.kr
jwchoi2@yna.co.kr
김경림
klkim@yna.co.kr
함께 보면 도움이 되는
뉴스를 추천해요
금융용어사전
금융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