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매년 1월이 되면 시중은행들은 일산 킨텍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등에 집결해 경영전략회의를 연다. 전국 부서장 이상 직원들이 모여 새해 경영전략을 공유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연중 가장 큰 행사다.
이 행사의 클라이맥스는 마지막 '포상'이다. 그 해 가장 실적이 좋은 영업점과 지점장은 대상의 영예를 안는다. 대상 직원은 은행장으로부터 트로피를 받고 꽃목걸이가 걸린다. 수천 명의 선후배들 앞에서 은행 로고가 새겨진 깃발을 흔들면 화려한 축포가 쏘아 올려진다. 힘찬 박수와 함께 헹가래를 받으며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은행원으로서 최고의 명예인 셈이다.
그런 영업맨들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아마도 지주회장들의 파워가 부각되던 시기부터인 듯하다. 아무리 실적이 좋아도 승진에서 고꾸라졌고 후배들에 밀려 쓸쓸하게 퇴직하기 일쑤였다. 함께 일하던 직원들도 힘이 빠졌다.
대신 본점의 출신들은 승승장구했다. 경영진을 가까운 곳에서 보좌해온 인물들이 본부장·부행장으로 승진하며 출세 가도를 달렸다. 은행장도 지주 등을 오가며 일해온 재무·전략통들이 장악했다. 어느 순간부터 수익 전략을 짜고 및 리스크 관리를 담당하는 재무·전략통이 행장이 된다는 공식이 생겨났다. '은행에서 잘 나가려면 본점 라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영업통이 홀대받는 사이 은행의 문화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경영진이 모여있는 본점 안에는 학연·지연 등으로 엮인 '라인'들이 만들어졌고 파벌도 생겨났다. 이는 내부통제 기능마저 상실시키고 각종 금융사고와 비위 행위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이런 승진 공식이 최근 연말 인사에서 깨지기 시작했다. 올해 4대 은행 중 3곳의 수장이 새로운 얼굴로 교체됐는데 모두 '영업통'을 전진 배치했다.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에 방점을 두고 차기 행장 인선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일제히 현장형 수장을 택했다.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사태로 내홍을 겪고 있는 우리은행이 조직쇄신과 신뢰 회복을 위해 택한 정진완 신임 행장은 은행원 30년 경력 중 26년을 영업에 몸담아왔다. 연임이 예상됐던 이재근 KB국민은행장과 이승열 하나은행장 뒤를 이은 이환주·이호성 행장 역시 영업 최전선을 두루 거친 영업 전문가다.
진짜 위기를 극복하려면 보수적 성향의 리더보다는 강한 추진력과 실행력으로 조직을 장악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리더는 현장 목소리에 공감할 줄 알고, 조직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에너지를 북돋아 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어려운 시기일수록 이러한 리더십은 주목받기 마련이다.
은행장은 '보스'가 아닌 '리더'가 되어야 한다. 결정을 주도하고 명령을 내리는 역할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일을 직접 추진하고 행동하며 실질적 역할을 수행할 줄 알아야 한다.
내수 부진, 수출 둔화 등으로 내년을 포함해 당분간 한국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은행은 영업맨들을 더 중용해야 한다. 우수한 영업 성과를 낸 지역 본부장 및 직원들에게 승진 등으로 보상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문화가 정착돼야 안팎으로 신뢰가 쌓일 수 있다. '나도 영업 현장에서 열심히 뛰면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있다'는 꿈을 키워줘야 살아있는 조직이 될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은행의 꽃은 '영업'이다. (경제부 이현정 기자)
hjlee@yna.co.kr
이현정
hjlee@yna.co.kr
금융용어사전
금융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