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투자하고 싶은 나라, 아빠가 물려주고 싶은 시장 만들어야"
(서울=연합인포맥스) 서영태 기자 = "우리 애들한테는 비트코인을 증여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는 50대 자영업자 이 모 씨는 세 아이의 아빠다. 재테크에 관심 많은 그는 특히 비트코인을 선호한다.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두 딸에게 비트코인 2천만 원어치씩을 증여했고, 국세청 신고를 마쳤다.
'비트코인은 사기'라는 관점은 여전히 잔존하지만, 많이 옅어졌다. 올해 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한 나라의 정부가 법화(法貨)에서 나오는 화폐 권력을 지키고자 가상화폐를 억누를 것이란 주장도 힘을 잃고 있다. 우크라이나·쿠바에선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하며, 아예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지정한 나라도 있다. 엘살바도르와 중앙아프리카다.
비트코인은 장기간 몸값을 올렸고, 이달 중순 처음으로 개당 1억5천만 원을 웃돌았다. 2010년, 한 미국 프로그래머가 1만 비트코인으로 피자 두 판을 샀는데, 이제는 1만 비트코인으로 2만 원짜리 피자 7천500만 판을 살 수 있다.
장기적으로 비트코인 가치가 더 오를 게 분명하다는 이 씨, 그는 한국 주식은 안 믿는다.
"처음엔 샀다가 다 팔았지, 안 되겠더라고" "그런데 안 팔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지난 5년 동안 비트코인 가치는 1천558%가량 치솟은 반면, 코스피는 10.23% 올랐다. 같은 기간 미국 S&P500지수는 86% 상승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는 꾸준히 늘었고, 지난달 말 기준으로 국내 5대 가상자산거래소 계정을 보유한 투자자 수는 1천559만 명으로 집계됐다. 중복 합산을 고려해도 상당한 숫자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 거래 규모도 증시와 비슷하다. 지난달 일평균 거래대금이 15조 원에 가까웠는데, 코스피·코스닥 거래대금은 17조 원 수준이었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개인투자자의 자금이 자본시장에서 이탈해 가상자산으로 향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기업 성장의 양분이 될 돈이 엉뚱한 곳으로 흐른다는 문제의식이다.
하지만 투자자가 '국장'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일반주주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상장사의 행태와 이를 뒷받침하는 법제 때문이다.
이사가 주주가 아닌 회사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긴 상법 382조의3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법제를 손봐야 할 정치권이 아예 양극단으로 갈라지며 한국 증시의 매력을 더 떨어뜨렸다.
12·3 비상계엄이라는 충격을 겪은 시장은 대통령 탄핵에 이은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서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애꿎은 시장이 돌을 맞았다.
저명한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투자자가 아시아에서 계엄령을 연상할 때 인도네시아·미얀마·필리핀·태국, 그리고 한국을 떠올리게 됐다"며, 정치적 사건으로 외국인의 인식이 나빠졌다고 지적했다.
"투자자로서 한국 시장을 포기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외국인 투자자도 있다. 신흥국 투자의 대가인 마크 모비우스는 연합인포맥스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을 인용하며 한국의 가능성을 믿었다.
이 책은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탄 대런 애쓰모글루가 쓴 화제작으로, 번영에는 제도가 중요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모비우스는 6시간 만에 끝난 계엄 사태를 두고 "한국인의 민주주의 스탠스와 자유롭고 열린 사회에 대한 열망"을 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투자자의 믿음을 정치권이 저버려선 안 된다.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고, 경제의 바탕인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외국인이 투자하고 싶은 나라, 아빠가 물려주고 싶은 시장을 만들 책임이 국회에 있다.
ytseo@yna.co.kr
서영태
ytse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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