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2015년 6월, KB금융지주가 LIG손해보험을 인수할 때만 해도 말이 많았다. 미국에서 국민은행 뉴욕지점만 운영했던 KB금융은, 미국 법인을 두고 있는 LIG손보를 품고자 미국 금융당국으로부터 보험업 라이선스까지 획득하며 공을 들였다. 비록 지금의 KB손해보험은 결국 미국 시장에서 철수했지만, 그 당시 KB금융에 LIG손보는 그만큼 사고 싶은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모두가 승자의 저주를 우려했다. 10년 전, LIG손보 인수전은 업계의 판도 변화를 예고할 만큼 '빅 딜'이었다. 옛 범한해상에서 출발한 LIG손보는 1980년대만 해도 명실상부 업계 1위였다. 삼성화재가 존재감을 드러내며 업계를 주도한 이후 LIG손보는 현대해상, 옛 동부화재와 함께 2위권 경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덕에 오너일가가 시장에 내놓은 20% 남짓의 지분가치는 자본시장에서 4천억원 안팎의 평가를 받았지만, 경영권 프리미엄이 더해진 몸값은 6천억원 그 이상에서 거론됐다. KB금융은 이를 6천450억원에 품었다.
고가 인수 논란은 계속됐다. 하지만 딜을 주도한 윤종규 전 회장은 보험사 인수에 남다른 애착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딜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LIG손보를 그 시기 '꼭 필요했던 모멘텀'이라고 회고했다. 이른바 KB사태로 말미암은 지배구조 내홍에 더해 리딩금융 탈환을 위한 경쟁, 그리고 옛 외환은행부터 우리금융지주, ING생명, 우리투자증권 등으로 이어진 인수합병(M&A) 잔혹사를 끊을 계기가 필요했다.
2017년 4월, 공개매수를 활용한 잔여지분 인수와 완전자회사 편입은 지금도 '신의 한수'로 평가된다. 다른 금융지주와 달리 자사주가 많았던 KB금융은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는 주식을 KB금융 주식으로 바꿔주며 소액주주를 보호했고, 내부적으로는 ROE도 끌어올렸다. 당시 KB금융 주가가 5만원이 채 되지 않았던 시절임을 생각하면 주주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 됐다. 연간 순익 3천억 원에 달하는 손보사를 완전히 품은 KB금융은 1천500억원 남짓의 염가 매수차익도 얻었다.
KB손해보험이 탄생한 이후 KB금융은 보험사 M&A 시장에서 '백기사'로 비유됐다. 2018년 교보생명이 새로운 재무적투자자(FI)를 찾을 때도, ING생명이 재매각에 나설 때도 그랬다. 결국 KB금융은 2년 뒤 푸르덴셜생명마저 품으며 제대로 된 보험 자회사 포트폴리오를 모두 갖춘 '유일한' 금융지주가 됐다. 남들이 걱정한 승자의 저주는, 이제는 보험사의 가치를 일찌감치 알아본 선견지명으로 회자한다.
지난해 KB금융은 국내 금융지주로는 처음으로 '5조 클럽'에 시대를 열었다. 1조 원을 훌쩍 웃도는 순이익을 낸 보험 자회사(KB손보 8천395억 원·KB라이프생명 2천694억 원) 덕이 컸다. 보험 부문의 선전에 비은행 자회사의 순이익 기여도는 40%를 웃돌았다. 이자이익을 향한 사회적 비판을 고려하면 꽤 바람직한 변화였다. 당분간 인오가닉 성장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신한금융지주와 금감원의 칼날에 진행 중인 보험사 인수마저 마침표를 장담할 수 없는 우리금융지주의 상황을 고려하면, (사모펀드 사태와 같은 사고만 아니라면) 당분간 KB금융의 독주는 유효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그룹 내 보험 자회사의 입지도 사뭇 달라졌다.
명실공히 KB금융그룹의 서열 1, 2위는 보험 전문가들이다. 양종희 회장은 KB손보 사장을 거쳐 그룹의 보험부문장을 지내다 지주 회장에 올랐다. 양 회장은 은행 금융지주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존재했던 '은행장을 거쳐야 지주회장이 될 수 있다'는 룰을 가장 먼저 깬 인사다. 이환주 국민은행장 역시 지난해까지 KB라이프생명을 이끌며 재무통으로서의 역량을 선보인 보험 전문가다. 물론 이들의 뿌리는 은행이지만, 보험사 경영을 해 본 이에 대한 프리미엄은 과거와 달라졌다. 그만큼 보험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유무형의 가치가 크다는 얘기다.
최근 보험 금융지주들의 선전을 보고 있노라면 일리 있는 얘기다. 지난해 삼성금융네트웍스의 순이익은 은행 금융지주를 넘어섰다. 삼성생명, 삼성화재가 각각 벌어들이는 연간 당기순이익만 2조원을 웃돈다. 메리츠화재를 내세운 메리츠금융지주 역시 금융지주 시가총액 3위에 오르며 은행 금융지주를 긴장시키고 있다.
IFRS17 도입 이후 보험사의 가치는 달라졌다. 많은 이들이 포트폴리오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어 하지만, 이제는 살만한 물건이 없다며 속상해한다. 마땅한 매물이없어 남은 라이선스에 거품이 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돌이켜보건대, 그 시절 승자의 저주는 빈곤에서 나오는 부러움이었다.(금융부 정지서 기자)
[KB금융지주 제공]
jsjeong@yna.co.kr
정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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